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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또는 스톱’, 금융노조 총파업의 물밑 맥락 읽기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09.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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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은행 시스템 불편은 만들지도 못하고, 교통질서만 어지럽힌 금융 노조 다 잘라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금융노조 총파업에 대한 호된 비난 글이다.

금융노조가 지난 16일 오전부터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덕수궁까지 약 300m 거리의 4개 차로를 점거한 탓에 출근길 불편을 겪자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총파업 대회를 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총파업 대회를 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융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서 임금 6.1% 인상과 주 4.5일제(36시간 근무), 영업점 폐쇄 금지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사측 단체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임금 인상률 1.4%를 제시하고, 근무 시간 단축과 영업점 유지 등에도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끝까지 교섭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파업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금융노조 총파업은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파업 이유에 대한 적절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적지 않은 금융 소비자들은 이들을 보고 ‘베짱이’라고 비판하며 노조 측 주장을 전면 반박하고 있다. 은행원 평균 1억원 임금이 사회적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고, 노조의 또 다른 요구인 영업점 폐쇄 금지와 주 36시간 근무 시간 단축은 어불성설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는 주장이다.

노조 파업에도 은행이 정상 가동되면서 도리어 구조조정 명분을 제공하는 ‘파업의 역설’이 연출됐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금융노조 파업 관련 은행권 현황에 따르면 금감원 현장 점검 집계 결과, 은행권 전체 직원의 9.4%인 9807명이 파업에 참여했지만 모든 은행의 전산 시스템, 영업점은 정상 운영됐다. 이로써 오히려 은행 직원을 줄여도 된다는 논리에 힘을 실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최근 은행권 부정적 이슈가 계속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시위였다는 평도 다수 나왔다. 각종 횡령과 이상 외환거래 등 금융권 전반의 도덕성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총파업에 대한 좋은 시선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심지어 일각에선 금융노조 총파업 배경에 정치적 명분이 자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수만 10만명이 넘는 금융노조위원장 선거가 올해 말 예정된 가운데 박홍배 노조 위원장이 총파업 선두에 나서면서 재연임 지지세력 규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앞서 박 노조위원장은 2019년 KB국민은행 단독 파업을 이끌어 강경파 인상을 심은 뒤, 이듬해인 2020년 더불어민주당 노동부문 최고위원으로 임명된 바 있다.

아울러 1차 총파업에서 보였던 은행 간 온도 차도 파업 의미를 강화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당장 쟁점이 산적한 은행 노조원들은 적극적인 파업 참여율을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은행들은 파업 선봉에 나서지 않았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파업 참여율은 0.8%에 불과했다.

예상과 달리 상황과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금융노조는 한 발 물러섰다. 1차 총파업 후 ‘강대강’ 기조를 보이며 2차 총파업도 예정대로 30일 진행할 것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으나, 외부 시선만 더 따가워지자 결국 지난 27일 10월 중 잠정 연기를 발표했다.

세종대로에서 가두행진하는 금융노조 [사진=연합뉴스]
세종대로에서 가두행진하는 금융노조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총파업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금융노조에 힘이 실리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다면 백기를 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예측을 내고 있다. 과거 파업 사례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총파업 당시엔 성과 연봉제에 반대하며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1만8000명 정도가 집결해 집회를 열었지만,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인한 정권 퇴진 운동에 힘을 모으기 위해 2차 총파업을 유보한 바 있다.

또 금융노조와 사측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당분간 매일 교섭을 진행한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과 김광수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장은 지난 26일 오전 대대표 교섭을 재개해 다음달 4일까지 매일 집중 교섭을 벌여 올해 산별 교섭을 마무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박 노조 위원장은 “임금 인상 요구안에서 노사 간 간극을 줄인 것을 비롯해 실무 단계에서 이야기됐던 ‘직장 내 괴롭힘 별도 조항’ 사항 등이 합의점을 찾았다”면서 “교섭 재개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총파업을 잠정 연기했을 뿐 양측의 조정안 수용 불가 입장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근로 시간 단축(주 4.5일 근무제 1년 시범 실시) △금융 공공기관 혁신안 중단 △산업은행법 개정 전까지 산은 부산 이전 중단 △임금피크제 개선 △점포 폐쇄 시 사전 영향 평가제도 개선 등 노조의 다른 요구 사항에 대해선 상호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즉 금융노조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교섭에 실패하면 언제든지 다시 총파업 불사하겠다는 스탠스를 띠고 있다. 실제 2차 총파업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나 금융노조는 30일 39개 지부 대표자 및 상임·비상임 간부 등 약 400명이 참가하는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 규탄 대회를 열어 투쟁은 지속하겠단 의지를 밝혔다.

업다운뉴스는 금융노조 관계자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전화 취재를 시도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않아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1차 총파업이 반쪽짜리 파업이 되며 동력을 잃었는데, 2차 파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 낮아 보인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시중은행 참가율이 1%를 밑돌고 있는데다, 본사 이전 이슈가 있는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 은행이 다수 참여했는데 이마저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만약 10월 중 총파업에 다시 들어간다고 해도 금융 소비자 불편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은행 업무 대부분이 온라인 및 모바일로 이뤄지면서 오프라인 파업 동력이 크게 약화된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5대 은행 파업 참가율이 0.8%면 굉장히 낮은 수치”라면서 “총파업이 다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규모라면 은행 시스템과 업무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정적인 여론과 낮은 파업 참여율에 한 발 물러선 금융노조. 교섭에 충실히 응하고 있지만 만약 2차 총파업을 강행한다고 하더라도 공감대와 명분이 부족하다면 또 다시 자충수에 갇힐지 모른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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