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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노벨경제학상 수상과 연준 수장의 실패론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2.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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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올해 노벨평화상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잔혹한 전쟁범죄·인권침해를 저지르며 세계 경제까지 위기로 몰아넣은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맞서 싸워온 벨라루스 운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와 러시아 시민단체 메모리알,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에 공동으로 돌아갔다. 지구촌의 분쟁과 보편적 인권 향상을 위해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벨평화상의 전통과 권위는 어쩌면 지극히 정치적인 함의로 유지된다고도 볼 수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의 경우에도 묘한 ‘정치적’ 해석을 낳게 하는 수상자를 배출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 필립 딥비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 교수와 함께 2022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발표했다. 은행권 붕괴를 막고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역할에 대한 이들의 통찰력 있는 연구 덕에 세계가 금융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게 공적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특히 대공황 연구의 대가라는 평가를 받는 버냉키 전 의장은 1983년 논문에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뱅크런(은행의 인출 행렬)이 은행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파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순수 경제학자가 아닌 미국 통화정책 수장 출신의 ‘준’ 관료에게 전례 없이 주어진 상이어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라는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끝자락에 글로벌 인플레이션 격랑 속에 연준발 초긴축의 파고가 세계 경제에 큰 충격과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시점에 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역설적으로 겨냥한 시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버냉키 전 의장의 수상으로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수장의 역할론이 새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연준의 역사는 ‘실수의 역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컨트롤타워에 대한 평가는 결과론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오일달러 사태로 촉발된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맞서 ‘가다 서다’ 대응으로 결국 물가를 잡지 못해 ‘실패한 의장’으로 기록된 아서 번스(재임 1970~78년)와 그 후임자로 금리를 20%까지 올리는 ‘마이웨이’ 초고강도 긴축으로 물가 안정을 이뤄내 ‘성공한 의장’으로 남아 있는 폴 볼커(1979~87년)가 대표적이다.

2006년부터 8년 동안 재임한 버냉키 전 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을 끈 소방수로 평가받으면서 성공한 연준 리더로 기록됐고, 노벨상 영예까지 안게 됐다.

그런 그도 실수를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모지기 관련 부실의 조짐이 지적될 때 위기 확산 우려에 대해 “그런 일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때까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실수는 자신의 대공황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감한 양적완화(채권매입) 정책을 펴면서 만회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공황보다 짧은 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다. 위기 발생 후 은행들에 사실상 무제한의 유동성을 뿌려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았다. 2007년 5%에 달하던 기준금리를 2008년 말에는 제로(0)금리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더 이상 금리로 대응할 수 없게 되자 연준 이사 시절이던 2002년 “디플레이션 때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22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그래픽=연합뉴스]
2022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그래픽=연합뉴스]

제로 수준의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3조 달러를 시장에 푼 것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파격적인 대응이었지만, 실물경제가 움직이는 메인스트리트가 아닌 월스트리트에 유동성이 쏠리면서 경기 부양보다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크게 올려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의 대처에 대한 긍정에 부정이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그의 후임으로 단임에 그친 재닛 옐런 현 미 재무장관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2018년 취임한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 우려에 다시 금리를 내렸고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버냉키 전 의장보다 더 팽창적인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버냉키의 저서 ‘행동할 용기(The Courage to Act·2015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헬리콥터 벤’의 기발한 정책공학을 모방하는 결단을 내렸다.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를 담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극복하려는 파월의 ‘용기’는 일단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연임의 토대도 닦을 수 있었다.

파월 의장의 치명적인 실수는 지난해 물가 상승에 대해 “일시적이다”라고 치부한 것이다. 지난 5월 버냉키 전 의장은 뉴욕타임스 등과 인터뷰에서 “연준의 뒤늦은 인플레이션 대응은 실수였다”고 직격탄으로 날렸다. 돈줄을 죌 시기를 놓친 후과는 현재의 뒤늦은 고강도 긴축에 따른 인플레이션 수출이었고 미국경기 희생 감수였다.

버냉키가 파월 실기론의 하나로 지목한 것은 ‘긴축 발작’에 대한 우려였다. 연준이 긴축 스텝을 가속화할 경우 지구촌 경제와 금융 시장이 흔들릴 것을 너무 걱정했기에 지난 3월에서야 제로금리 시대를 접고 긴축을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충격적으로 긴축 발작을 경험했던 버냉키였다. 금융위기 때 양적완화를 거둬들이기 위헤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사하자 그 말 한마디에 신흥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테이퍼링 텐트럼(긴축 발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연준 이사였던 파월은 이같은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으려다 보니 신중론의 트랩에 빠져버린 셈이다.

파월 연준 의장 [사진=AP/연합뉴스]
파월 연준 의장 [사진=AP/연합뉴스]

이제 파월의 실패론은 용기보다는 인내에 맞춰져 있다.

지난 8월 잭슨홀미팅 때부터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고 강한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금리인하 고려를 불허하겠다는 매파적인 입장을 밝히며 "그것을 완수할 때까지 우리는 견뎌야만 한다(keep at it)"고 누누이 강조한 파월 의장이다. 버냉키가 정착시킨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안내)'도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연준의 2% 물가 목표제는 버냉키가 도입한 것이지만 파월의 스탠스는 볼커의 자서전 제목 ‘인내(Keeping At It)'를 연상시킨다.

파월의 ’인내‘는 성공할까. 만시지탄의 긴축으로 인한 수업료를 경기 침체로 치러야 할 수도 있는 국면이라 시장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 연준의 초긴축으로 인해 ’슈퍼달러‘만 득세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균형을 불러왔기에 미국 외 나라들의 역환율전쟁은 그만큼 고통을 수반하고 신흥국·개발도상국의 자본유출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노벨경제상 공동수상 발표 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화상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의 경제 상황이 14년 전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라면서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금융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에 이를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킹달러‘ 여파로 국제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 등을 사례로 들면서 이같은 사건이 미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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