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안보 위기가 불러온 우경화 바람, 유럽을 물들이다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0.13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안전보장’

줄여서 ‘안보’다. ‘~안보’란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안보란 국가가 외부의 위협에 대비해 자국의 안전을 유지하고 확보하는 일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군비 증강에 머물지 않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는 개념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세계 각국은 보건, 에너지, 식량 등 여러 분야에서 안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왔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동시대인에게 전례 없는 보건 위협을 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6억명 이상의 확진자와 600만명을 웃도는 사망자를 낸 감염병은 기존에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나 나왔을 법한 일을 현실로 가져왔다. 세계 각국은 오랜 시간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고, 경제활동은 마비됐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외출을 피했다.

어디 그뿐인가. 올해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와 식량 위기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직접 전쟁을 겪는 이들은 물론 간접적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를 야기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가뜩이나 기존 에너지 체계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작물의 작황 부진까지 이어지던 상황에서, 러-우 전쟁이 겹치자 두 국가로부터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해오던 국가들은 즉시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수요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공급은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다.

최근 유럽에서 우경화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부상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최근 유럽에서 우경화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부상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런 가운데 최근 유럽에서 우경화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부상하며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 정치는 중도좌파의 성향을 보이곤 했는데, 근래 여러 안보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급격히 우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경화란 반공주의적, 보수·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지는 것을 뜻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오일석 안보전략연구실 연구원과 조은정 한반도전략연구실 연구원이 지난 6일 발표한 ‘신흥안보 위기와 유럽의 우경화’에 따르면, 최근 외부로부터의 여러 위협은 유럽 각국에 포퓰리즘에 급급한 극우세력의 집권을 야기했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확산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하나의 유럽’으로 대표되던 유럽 지역의 집단안보 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그동안 유럽이 추구했던 규범의 매개자, 갈등의 중재자로서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우선 지난달 25일 실시된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는 신나치즘에 뿌리를 둔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이 이끄는 우파 연합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전체 의석의 60%가량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우파 성향이 강한 정부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달 11일에는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포함된 우파연합이 승리하면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당시 스웨덴 의회 의원 349명이 선출됐는데, 이중 좌파로 분류되는 정당들이 전체의 49.6%인 173석, 우파로 분류되는 정당들이 전체의 50.4%인 176석을 차지했다. 특히 극우 성향인 스웨덴민주당이 중도우파 성향 온건당을 넘어서며 범우파 진영 1당이자 원내 2당으로 올라섰는데, 이는 1979년 총선거 이후 지속된 ‘1당=사회민주노동당(좌파성향), 2당=온건당’ 구도를 43년 만에 깨뜨린 것이다. 특히 18~30세 사이의 젊은 층 사이에서 우파 성향이 크게 늘면서 노년층이 추억하는 평등주의적 복지국가로서 스웨덴의 이미지가 앞으로 더는 유지되기 어려워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 4월 24일 프랑스에서 치러진 대통령 결선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중도 성향)이 58.54%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당선됐으나, 강성 우파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41.4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017년 대선 당시 마크롱 대통령과의 격차였던 32%포인트를 17%포인트로까지 좁히는 대약진을 보여줬다. 이에 프랑스에서도 극우세력 지지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최근 유럽 주요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우 정당의 집권 또는 세력 확대는 금융위기 이후 지속해온 유로존의 금융 불안, 유럽연합(EU)의 통합과 개혁의 정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안보 불안, 물가상승과 경제 불안정 등에 대해 기성 정치가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파시즘이나 포퓰리즘에 기초한 유럽 극우 정당들은 역사적으로 경제공황, 제2차 세계대전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역사는 반복되듯, 이번에도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보건 위기는 극우 정당들이 기존에 주장해오던 불법 이민 차단과 국경 봉쇄 강화 등에 힘을 실어줬고, 이는 유럽 사회가 연대와 협력보다는 자국중심주의, 배척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 사회로 나아가게끔 하는데 자양분을 공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러-우 전쟁은 에너지·식량 위기를 촉발했고, 이는 다시 유럽의 우경화를 가속했다. 서구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자, 러시아는 이들 국가로의 에너지 수출을 제한하겠다며 맞불 대응했고, 급기야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은 지난달 2일 독일로 향하는 천연가스관 ‘노드스트림-1’에서 점검 중 기름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가스 가격이 치솟으며 유럽 내 에너지 안보 우려는 더욱 극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유럽 경기 침체 우려까지 확산하면서 유로화 가치는 닷컴 버블 이후 처음으로 ‘1달러=1유로’ 패리티(등가)를 깨뜨리며 주저앉았다. 13일 현재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0.97달러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유럽의 정치·경제적 불안은 당분간 지속,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러시아 가스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클 뿐 아니라, 낮아진 유로화 가치가 현재 각국이 겪는 고물가를 심화해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하고 있는 탓이다. 먹고 살기 힘들수록 사람은 협력이나 연대 등을 꾀하기보다는 제 몸, 제 가족, 제 국가만을 챙기며 움츠러드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유럽 내 사회 불안이 우경화를 가속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사회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고자 유럽 주요국들은 각종 에너지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천연가스 부가가치세 인하, 저소득자 및 통근자 지원금 제공, 에너지 기업의 초과 이익에 대한 과세 등을 발표했고, 오스트리아는 전력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도 전력 생산업체에 대한 유동성 지원 정책을 발표했으며, 프랑스 역시 가스 가격 동결과 전기료 인상 폭을 제한하는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이들 국가는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새로운 가스 공급체계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폴란드는 노르웨이에서 생산된 가스를 덴마크를 거쳐 자국으로 공급하는 발틱 파이프를 통해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추고자 노력 중이며, 불가리아와 그리스를 잇는 가스관 IGB가 가동되기 시작함에 따라 그리스 연안으로 수입되는 아제르바이잔 가스 중 연간 최대 30억㎥가 불가리아 등 유럽 동남부 지역으로 공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80%가량 의존해온 불가리아를 비롯해 발칸반도 국가들이 에너지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란 평이다.

그럼에도 현재 유럽의 우경화, 포퓰리즘 등에 대한 경각심을 내려놓기엔 시기상조다. 최근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위기 때마다 출현하는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 것을 촉구했다.

“포퓰리즘은 항상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기에 득세했지만, 아주 복잡한 문제에 단순하고 단기적인 해답을 제시했기에 언제나 재앙이라는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오일석, 조은정 연구원 역시 “현재 진행되는 유럽의 우경화는 기성 정치권의 무능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권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며 “신흥안보 위기에 따른 불확실성은 해소되기보다는 증대되고 있으므로 우경화는 유럽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이어 “이러한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는 당분간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신흥안보 위기를 맞아 시대적 요청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두 연구원은 극우세력의 득세와 관련해서 “낙관적 시각에서 보자면 2차 세계대전 당시와 달리 현재는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집단안보 체제가 지역 내에서 다면적으로 작동 중이므로 향후 전쟁으로 치닫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면서도 “회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독일과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를 막지 못했던 과거 역사를 돌이켜볼 때 국제기구 및 지역기구의 역할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역부족일 수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우경화에 대한 사회적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국제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의료정보의 공유와 방역 협력,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공동 연구개발, 국외 천연가스 탐사 개발과 재생에너지 개발에 관한 공동 협력 확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한 공급망 안정성 유지를 위한 협력 강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신흥안보 위협 대응을 위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