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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당신의 문해력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上)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1.20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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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설빔하세요.”

파트타임 업무를 하는 한 젊은이는 사장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설빙이요?”라고 답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설 연휴를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글이다. 설을 맞이해 새로 장만해 입거나 신는 옷, 신발 등을 이르는 말로, 설을 맞아 새 옷차림을 하는 것을 뜻하는 설빔을 알아듣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다.

최근 청소년 세대의 문해력 부족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최근 청소년 세대의 문해력 부족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 왜 청소년 문해력은 떨어질까?

이뿐만이 아니다. 웹툰 작가 사인회가 예정됐던 서울의 한 카페 측이 사과문을 올리며 사용한 ‘심심한 사과’ 논란과 공휴일로 인해 포털 검색 순위에 오른 ‘사흘’,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해 과제물을 제출하지 못한 대학생 등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이것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문해력 논란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광복 직후 1945년 한국인 중 78%는 한글을 봐도 읽을 수 없는 문맹이었다. 그러나 문맹 퇴치 사업 등 교육 발전으로 1958년 조사에서 문맹률은 4.1%로 급감했다. 문제는 이제 ‘글자’는 누구나 읽을 수 있으나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이러한 문제는 두드러진다. 교육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1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및 대응 전략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우리나라 학생들의 국어 성적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해마다 전국 중3·고2 학생의 약 3%를 표본으로 추출해 국어, 영어, 수학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데 국어 보통 학력 이상인 고2 학생 비율은 2019년 77.5%에서 2020년 69.8%로, 2021년엔 64.3%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국어 보통 학력 이상인 중3 학생 비율 역시 82.9%에서 75.4%, 74.4%로 줄었다. 심지어 국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인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은 고2 기준으로 2019년 4%에서 2021년 7.1%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국어 성적과 문해력은 상관없다는 일각의 비판에 반박 가능한 객관적이고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담은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 10여년 치를 분석해 2020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의 읽기 소양은 2006년 79개 참여국 가운데 1위에서 2009년 2~4위, 2012년 3~5위, 2015년 4~9위, 2018년 6~11위로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2021년 4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응답자 37.9%가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70점대(C등급)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각 기관과 현업에 종사하는 교사들까지 청소년 문해력 부족을 꼬집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작금의 문해력 논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BS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 캡처 [사진=EBS 제공]
EBS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 캡처 [사진=EBS 제공]

그렇다면 청소년 문해력 저하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책이나 신문 같은 인쇄 매체보다 영상 매체를 접하는 비율이 증가한 점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꼽힌다. 유아 때부터 유튜브 등 동영상에 자주 노출된 청소년에게 책과 신문을 읽는 것 자체가 밋밋하게 느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기에 소홀해진 상황에 몰린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간(2020년 9월~2021년 8월) 초중고교 학생의 경우 연간 종합 독서량은 34.4권으로 2019년에 비해 독서량이 6.6권 감소했다. 같은 조사에서 학생이 꼽은 독서 장애 요인 중 ‘게임·스마트폰·인터넷·텔레비전 등을 이용해서’라는 응답이 23.7%로 가장 높게 차지한 것도 독서량 감소와 무관치 않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글을 읽는 것을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등 글 자체를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 일부 교육자는 청소년 문해력 저하를 가속화하는 원인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초·중·고등학교 전반에 걸쳐 오프라인 교육을 온라인이 대체했고, 이는 인쇄 매체에 대한 접근성 감소로 이어졌다. 특히 집에서 학업을 돌봐주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일수록 문해력 저하 현상은 두드러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소년 문해력 논란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워싱턴 대표 공영 방송인 WETA의 교육 프로젝트 Adlit에 따르면 미국에선 매년 약 50만명의 학생이 학교에 좌절하고 낙담하며 자퇴한다. 이런 학생 중 대다수가 기본적인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하고, 학교는 이들의 교육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문해력 교육을 제공할 준비가 미흡하다고 꼬집고 있다.

■ 문해력이 떨어지면 뭐가 문제인데?

문해력 논란이 있는 것도 알았고, 그 이유도 알았다. 그렇다면 문해력이 떨어지면 무엇이 문제일까. 꼭 문해력이 높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청소년에게 중요한 건 결국 학습이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기초 학력까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수학 학원 강의실에서 독서를 가르친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수리력이 뛰어나더라도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자구책이다. 하물며 수학도 이러한 상황인데 문장과 글을 정확하게 읽어내야 하는 과목의 경우엔 문해력 부족이 청소년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일부 교육자들 역시 “문해력이 떨어지면 기초 학력이 같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기본적인 발문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성취도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해력과 기초 학력의 상관관계는 분명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문해력이 떨어져 문장 이해력이 낮아지게 되면 사고의 흐름이 끊겨 학습을 포기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7~10월 EBS에서 방영된 ‘당신의 문해력+’에선 문해력 격차가 있는 학생을 비교하며 문해력과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학습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업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문해력 부족으로 인해 생긴 커뮤니케이션 오류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문해력 부족으로 인해 생긴 커뮤니케이션 오류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편에선 4차 산업 혁명 시대로 넘어가면서 인공지능(AI) 보급과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단순 문해력은 중요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성질만 바뀌었을 뿐, 오히려 사회가 복잡해지고 고도의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인지하기 위해 문해력은 여전히 필요한 기초 역량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AI가 모든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이 그나마 AI와 차별화하고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사고력이고, 이러한 사고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문해력이다. 글을 읽지 않아도 이미지와 영상이 모든 정보를 알려주는 시대지만 결국 글을 읽어내지 못하면 깊이나 가치가 담긴 정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중론이다.

또 디지털 기기와 문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디지털 문해력 문제도 이것의 연장선이다. 고도의 검색과 평가를 통한 정보의 취사선택을 위해선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창의적 재구성 능력을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즉 디지털 문해력도 전통적인 문해력이라는 굳건한 터전이 바탕이 돼야만 튼튼하게 증축되는 셈이다.

지식 기반 사회와 디지털 사회로 대변되는 미래 사회에서 문해력의 심화와 확장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의 중심 세대가 될 현재 청소년들이 기초 문해력 개념을 버린다기보다 이를 중심으로 하되, 시대 상황을 반영해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할 시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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