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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기업문화를 위한 기업의 ‘호칭 파괴’, 그 겉과 속

  • Editor. 박대연 기자
  • 입력 2023.02.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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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박대연 기자] “안녕하십니까, 00기업 000프로입니다.”

“안녕하세요, 00기업 000PL(프로젝트 리더)입니다.”

기자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호칭이다. 기존 알던 호칭은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이었지만 프로, 매니저, 리더, 파트너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부르기에 취재 도중 엉뚱한 직함으로 부르는 등 호칭 때문에 실수를 한 경험이 적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부터 기업들이 수평적 기업문화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그중 가장 주목 받는 기업문화는 기존 직급별 호칭에서 벗어나 매니저, 영어 이름, 닉네임 등과 같이 이색적인 호칭을 도입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언제부터인가 호칭과 직급을 파괴하고 수평적 관계를 맺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호칭과 직급이 사라지거나 통일되다 보니, 상하관계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는 평가도 많다. 덕분에 더욱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는 장점이 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가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산한다는 취지로 그동안 직원 간에만 적용했던 '수평 호칭'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산한다는 취지로 그동안 직원 간에만 적용했던 '수평 호칭'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대기업 중에선 CJ그룹이 가장 먼저 호칭과 직급 변화를 시도했다. 2000년부터 CJ는 서로를 ‘님’이라고 불렀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재현님’으로 불렸다. 처음 직원들 사이에서 입에 잘 붙지 않아 고충이 있기도 했지만, 현재는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평이다.

CJ를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그 흐름을 따랐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직원 간 수평적 호칭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직원 간 공통적인 호칭은 ‘님’을 사용하되 부서 내에서는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영어 이름’ 등을 자율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최근 삼성전자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도입한 수평 호칭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까지 확대한다고 지난 1일 사내에 공지했다.

2016년 도입된 수평 호칭 범위는 직원들 간이었지만, 앞으로는 경영진끼리도 수평 호칭을 사용하고, 경영진이 참석하는 미팅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에서도 경영진이나 임원을 호칭할 때 영어이름이나 ‘영문 이니셜’, ‘님’으로 부르도록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삼성전자 안에서 ‘재용님’, ‘제이(Jay)’로 불리게 됐다.

SK텔레콤(SKT)도 2006년부터 직책을 호칭으로 바꾸고 직책 없는 임직원은 ‘매니저’로 통일했다. 사내 호칭 변경이 있고 12년 후인 2018년부터는 기존 직책 대신에 ‘님’을 붙이거나, 조직별로 필요시 ‘영어 이름’, ‘닉네임’으로 호칭을 붙이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2006년 당시에는 팀장과 임원은 제외했지만, 2018년부터는 전체로 확대했다.

SK이노베이션도 2021년부터 수직적인 문화를 파괴하고 상하관계의 벽을 허물자는 취지로 직급체계를 사원-대리-과장-부장에서 ‘PM(프로페셔널 매니저)’으로 통일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 구성원들이 직접 제안하고 선택한 직급 호칭으로, 스스로 업무를 완결적으로 관리하는 프로페셔널한 구성원이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입사원부터 부장까지 ‘PM’으로 불리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도 PM으로 불러주고 있다. 내부에서는 단일 직급화로 승진 개념이 사라져 성과에 따른 공정한 대우를 받게 됐다는 평가다.

2000년대부터 기업들이 수평적 기업문화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호칭을 통일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2000년대부터 기업들이 수평적 기업문화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호칭을 통일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창업 초기부터 호칭 파괴한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카카오, 토스뱅크를 들 수 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카카오는 수평적인 의사소통과 구성원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위해 회사 설립 초기부터 직원 사이에 직급이 없었다. 상대방의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신입사원들도 입사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영어 이름 만들기다. 영어 이름 뒤에 선배, 매니저, 님 등과 같은 호칭을 따로 붙이지 않기 때문에,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브라이언’이라고 불렸다.

토스뱅크는 과장-차장-부장 등 직급 없이, 이름 뒤에 ‘님’으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직책도 리더 하나뿐이다. 일관된 호칭으로 자연스럽게 수평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물론 호칭을 바꿨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린 기업도 많다.

KT는 2009년, 포스코는 2011년, 한화그룹은 2012년 직원 간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지만 각각 2014년, 2017년, 2015년에 기존 직급 체계로 복귀했다. 다른 회사와 업무할 때 호칭에 따른 혼선이 생기고, 업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승진 계단’이 사라지면서 직원들의 의욕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 KT와 포스코는 여전히 기존 직급 체계를 사용하고 있고, 한화그룹은 계열사마다 자율적으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프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고, 한화증권은 기존 직급을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주요 기업 호칭. [사진=박대연 기자]
한국 주요 기업 호칭. [사진=박대연 기자]

업계에서는 호칭과 직급 변화를 통해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지만, 사업과 조직 특성에 따라 고려해야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고 현장 노하우가 생산성을 좌우하는 대형 제조업체는 아직까지 ‘연공서열 = 능력’이라는 공식이 유효하기 때문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대기업들도 디지털 전환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부서가 많아졌으나, 모든 부서에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

전문가들은 호칭이나 직급 체계 변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변화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기존에 직책을 기반으로 한 호칭은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 책임을 나눠 위기 발생 시 문제 해결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지시와 명령에 익숙한 조직은 다소 억압적이어서 자율적, 창의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면서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뭐든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직급 파괴와 호칭 변경이 극적인 효과를 이루기 위해선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되며 구성원 간 상호 존중과 배려, 자율과 책임 등 근본적으로 조직문화가 바뀌어야만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J 관계자도 “수평적인 기업문화 형성을 위해 호칭에 변화를 주었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지금도 새로운 조직문화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도 “현재 다른 기업과 협업할 때도 다들 PM이라고 불러준다”며 “내부적으로도 호칭 변화에 잘 적응해 업무 효율성 제고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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