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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지나자 희생자 급증...대지진이 뒤흔든 에르도안 정권의 명운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3.02.1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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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의 누적 사망자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해 전망한 2만명선을 넘어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희생자 규모를 넘어 12년 만에 최악의 강진으로 평가된다. 통상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을 넘어선 데다 최대 20만명이 무너진 건물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희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7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낳은 이번 지진 참사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년 장기 집권으로 ‘21세기 술탄(황제)’으로 불려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흡한 재난 대비와 지진 대응으로 민심의 분노를 부르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9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들이 무너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들이 무너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AFP통신, 미국 CNN,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지진 발생 나흘째인 9일(현지시간) 누적 사망자가 1만7134명으로 공식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시리아에서는 정부와 반군 측 구조대 '하얀 헬멧'이 공개한 것을 합친 사망자가 3162명으로 늘어났다.

이로써 지난 6일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 지역을 강타한 규모 7.8 지진은 사망자가 2만명을 넘어서면서 21세기 들어 발생한 초대형 지진 가운데 희생자 기준으로 7위로 올라섰다. 2011년 3월 쓰나미를 동반한 동일본 지진(1만9846명)과 자리바꿈한 것이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22만2570명)이 단연 최악의 참사이지만 이번 지진의 사망자가 더 크게 늘어날 경우 2004년 스리랑카 지진(3만5399명)·2003년 이란 지진(2만6796명)을 넘어 5위까지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추정치로는 규모 7.8, 7.5으로 발생한 이번 강진의 사망자가 10만명 이상이 될 가능성도 24%에 달하는 만큼 금세기 두 번째로 사망자가 많았던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16만5708명) 수준도 넘볼 수 있다. 지진 직후 첫 보고서에서 0%였던 ‘10만명 관측’이 이틀 전엔 14%까지 오른 데 이어 다시 10%포인트나 뛴 것이어서 상황은 비관적으로 바뀌고 있다. 현지에서 붕괴한 건물 아래에 갇혀 있는 시민들이 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당국은 11만명 이상의 구조 인력을 지진 피해 지역에 투입했고, 전 세계 56개국(6479명)에서 파견된 해외 구호대도 구조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영하권의 날씨 등으로 잔해 속 생존자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한국 정부가 파견한 역대 최대 규모의 긴급구호대(118명)가 활동 첫날 생존자 5명을 구조했지만 구조 가능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AP통신은 2011년 일본 대지진에서 10대와 80대 할머니가 납작한 주택에 갇힌 지 9일 만에 생존 상태로 발견됐고, 2010년 아이티 지진 때는 16세 소녀가 15일 만에 구조된 적이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캐서린 스몰우드 WHO 선임비상계획관이 “사망자와 부상자가 다음주부터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은 이유다.

튀르키예만 놓고 볼 때 1999년 이스탄불 인근을 강타한 규모 7.4의 지진 사망자(1만8000명)에 이어 1939년 규모 8의 지진으로 3만2962명이 사망한 지난 세기 자국의 최악 참사 수준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20년간 지구촌을 강타한 초대형 지진 피해 현황(총 사망자 순) [자료=CNN 홈페이지 캡처]
최근 20년간 지구촌을 강타한 초대형 지진 피해 현황(총 사망자 순) [자료=CNN 홈페이지 캡처]

지진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막대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 정부가 글로벌 통화긴축 기조와 반대로 저금리 수준을 유지하며 경기 부양에만 집중해온 탓에 50%가 넘는 인플레이션율로 고통받는 튀르키예 경제에 충격파는 실로 클 수밖에 없다.

USGS는 이날 이번 지진에 따른 튀르키예의 경제적 손실 추정 규모를 GDP(국내총생산)의 최대 10%로 가늠했다. 손실이 100억∼1000억달러가 될 확률을 35%로 가장 높게 예상했다. 1000억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이틀 전 24%에서 33%로 높여 잡았다. 블룸버그통신의 셀바 바지키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이번 지진에 대한 튀르키예의 공공 지출이 GDP의 5.5%에 해당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CNN 집계를 보면 최근 20년 동안 발생한 12대 강진 중에서 경제적 피해 규모는 동일본 지진이 2730억달러로 가장 컸고, 쓰촨성 지진(1160억달러), 아이티 지진(110억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쓰촨성 지진의 손실은 GDP 대비 1.2%이었고, 일본 지진의 경우는 GDP의 3.9%까지 높아져 경제성장률에서 2% 수준의 평균하락세가 지진 이후 6분기가 지난 시점까지 이어졌다.

튀르키예는 지난 세기 마지막 지진이 닥친 1999년 GDP 성장률이 3.3% 역성장한 바 있다.

한때 아시아·유럽·아프리카 3대륙을 호령했던 오스만제국의 옛 영화를 꿈꾸며 지난해 국명을 터키에서 ‘튀르크인의 땅’이란 뜻인 튀르키예로 바꾼 에르도안 대통령으서는 지진으로 역설적인 상황을 맞았다.

1999년 지진 이후 이어진 경제 위기 속에서 2002년 조기 총선을 통해 권력을 잡은 뒤 총리직에 이어 대통령까지 올라 장기집권의 토대를 닦은 그는 다시 지진 쇼크 속에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5년 연임에 도전하는 대선을 석 달 앞두고 역대급 지진으로 밀려든 국가적 위기에서는 급격한 여론 악화로 집권가도가 흔들리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 발생 사흘이 지난 뒤에야 최대 피해 지역인 남부 하타이주 등을 방문해 지진 대응과 관련해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 민심을 들끓게 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피해 전망 [그래픽=연합뉴스]
미국 지질조사국의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피해 전망 [그래픽=연합뉴스]

1999년 참사 이후 지진 예방과 응급 서비스 개발 등에 쓰겠다며 정부가 ‘지진세(특별통신세)’를 그간 총 880억리라(추정액·46억달러)나 걷어놓고도 사용처가 오리무중이어서 비난받는 와중에 책임 회피성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BBC는 대선주자인 케말 클르츠다로글루 야당 대표의 “전무한 준비“ 비판을 인용하면서 “터키 정부가 부과한 '지진세'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형제와 조카들이 아직도 잔해 속에 갇혀 있다는 시민 세랄 데니즈(61)는 AFP와 인터뷰에서 “1999년 이후 징수된 세금은 모두 어디로 갔느나"고 따져물으며 정부의 부실한 대책을 질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이 발생한 10개 주에 3개월 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재건을 ”1년 이내 완료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정면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만제국의 튀르크인들이 재건의 힘을 모아 공화국을 건국한 지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맞춰 장기집권을 위한 철권통치라는 비난에도 세계 10대 경제대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비전 2023’ 계획을 야심차게 실행해오던 에르도안 정권이 지진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민심의 향배가 어디로 쏠릴지, 구호와 연대의 손길을 보내는 지구촌의 이목도 끌어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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