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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또 공시’에 지친 은행권, 관치의 또 다른 그림자?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5.2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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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공시 강화로 영업점 폐점 줄인다.” vs “또 공시냐.”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의 점포 폐쇄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점포 폐쇄 내실화와 사회 공헌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공시 확대를 내세웠다. 하지만 은행권 일각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동시에 연속된 공시 강화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논의해 확정하고 이달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금융위에서 발표한 ‘은행, 대체 점포 없이 점포 폐쇄 안 된다’는 자료에 따르면 내실화 방안으로 △사전 영향 평가 내실화 △실질적인 지원 방안 마련 △점포 폐쇄 관련 정보 공개 확대 등이 꼽힌다.

특히 은행별 점포 폐쇄 현황을 비교 공시해 영업점 감축 행렬에 제동을 건다는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점포 폐쇄·신설 현황을 분기별 1회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안’을 이달 초 사전 예고한 바 있다. 이로써 은행권은 현재 연 1회 공시하던 점포 폐쇄 현황을 오는 8월부터 분기별로 공시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점포 폐쇄 관련 공시 의무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무분별한 은행 점포 폐쇄를 방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 영업점 폐쇄 관련 공시를 강화하려는 이유론 고령층 등 금융 소외 계층 불편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금융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거론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지난달 열린 ‘제5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 작업반 회의’에서 “금융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며 은행은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 점포 수를 줄이고 있지만, 점포 폐쇄에 따른 금융 소비자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점포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령층에겐 점포 폐쇄가 곧 금융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효성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실제 은행권은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위한 조치가 완료되면 점포 폐쇄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DX) 속도를 감안하면 오프라인 점포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인터넷 은행은 점포 자체가 없어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지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또 비용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실제 대신증권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3년 하반기 산업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비이자 이익 덕분에 연간 이익이 증가하지만 하반기엔 순이자마진(NIM)이나 대출 성장 등 핵심 지표가 악화되며 부진한 실적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실적 부담이 높아지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몇 년 동안 점포와 인력을 감축해 왔다. 일각에선 은행도 수익을 내야 하는데 점포 폐쇄 공시를 확대하며 규제를 강화하는 건 지나친 관치가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금융당국의 은행권 공시 확대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예대금리차 공시 범위를 오는 7월 확대하기로 하면서 설왕설래가 오간 바 있다. 당국에선 예대금리차 공시를 매달 내며 평균적인 금리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금융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효과가 있다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각에선 은행권 경쟁 촉진과 소비자 정보 접근성 제고에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이 나오며 금융당국이 은행 ‘줄 세우기’에 매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기도 했다. 차주별 대출 조건이 다르고, 은행별 조달 비용 등의 차이로 금리 산정 체계가 다르다는 점으로 인해 예대금리차 축소 효과 한계가 뚜렷한데, 공시만 강화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관치 금융이라는 불만도 계속해서 나오는 형국이다. 예대금리차 공시가 강화되면 은행권은 핵심 영업 정보를 공개하게 되는데, 이로써 경영 전반에 정부 입김이 닿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즉 단순 줄 세우기로 은행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정치권이 은행 압박 강도를 높이게 되면 은행권은 눈치 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적 시선이 우세하다.

금리 인하 요구권 수용률 공시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낮은 금리 인하 요구권 수용률을 질타하며 결과를 공시토록 만들었다. 금융권이 낮은 수용률로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지난 2월 금융위와 금감원이 금리 인하 요구권에 대한 소비자 안내를 강화하고 금융사 금리인하 실적 공시를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금리 인하 요구 제도 실효성 제고 방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금리 인하 요구 신청이 많을수록 해당 지표가 악화되는 통계의 함정이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금리 인하 요구권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신청 접근성을 개선하면 수용 건수에 비해 신청 건수는 압도적으로 늘어나게 돼 오히려 나쁜 금융사가 돼 버리는 셈이다. 수용률만 주목받기 때문에 이자 감면액 등 실제 대출자 이자 부담 경감 지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허점이 생긴다. 은행권에서 금융 소비자를 위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금융당국 정책 취지에도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회 공헌과 보수 지급액 공시 제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은행의 공적 역할을 공시 확대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도 크다. 특히 사회 공헌 부분은 진정성이 훼손될 공산이 높다. 업계 관계자들은 큰 규모로 사회 공헌 예산을 책정한 뒤 이를 소진하는 데만 목적을 둘 경우 사회 공헌 활동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시중은행 창구 [사진=연합뉴스]
시중은행 창구 [사진=연합뉴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점포 폐쇄 관련해선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 “고객 편의성과 관련된 것이라 공시를 하는 중이다. 영업점을 폐쇄할 경우 향후 미치는 영향에 대해 평가하고, 소비자들이 실제로 어떤 불편이 있는지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순 있겠지만 은행권에선 압박 아닌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올해는 (점포를) 최소한으로 줄일 계획이다. 금융당국에서 준 가이드라인에 맞춰 실행할 것”이라며 “하지만 공시 확대는 부정적인 포인트가 있다. 금융당국과 소통을 하겠지만 한 점포를 운영하는 데 있어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효율화 등 은행 사정을 무시하고 점포를 폐쇄하면 나쁘다는 식의 프레임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연속된 공시 강화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은행권. 금융당국의 공시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점포 폐쇄 공시 확대가 실효성 높은 방안이 될지 허울뿐인 규제에 그칠지 업계 시선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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