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관행 혹은 불법, 증권사로 향한 칼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5.25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증권사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기 불일치 운용 전략과 자전 거래를 두고 증권사와 금융당국의 마찰이 예상돼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머니마켓랩(MMW), 특정금전신탁(MMT) 등 랩어카운트와 채권형 신탁 상품을 판매하고 자산을 운용해왔다. 랩어카운트와 채권형 신탁은 증권사가 고객 자금을 맡아 여윳돈을 3개월 등 단기로 굴려 운용하는 상품이다.

KB증권 본사 전경 [사진=KB증권 제공]
KB증권 본사 전경 [사진=KB증권 제공]

MMT의 경우 국공채 등 우량하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 기준 금리보다 0.5~1%포인트 가량 높은 연 수익률을 제공하는 안전한 상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KB증권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단기 투자 상품을 위해 유치한 자금을 장기 채권에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만기가 도래했거나 중도 해지를 요청한 고객에게 새 고객에게 받은 자금을 내주는 ‘돌려막기 영업’을 한 의혹도 받고 있다. 이는 장·단기 금리 차를 이용한 만기 불일치 자산 운용 전략으로 꼽힌다.

문제는 지난해 기준 금리가 뛰면서 KB증권의 이러한 영업 관행에 비상이 걸렸다. 시중 금리가 치솟으며 법인 고객 자금으로 투자했던 장기채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당시 KB증권이 수익률 폭락으로 인한 평가 손실은 900억원에 이르는 걸로 알려졌다.

KB증권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하나증권을 찾았다.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 계정을 활용해 자사 법인 고객 계좌에 있던 장기채를 시장 가격이 아닌 평가 손실 이전 장부가로 사들였다. 이는 불법 자전 거래 소지가 있는 행위다. 자전 거래는 가격을 밀어 올리거나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스스로 매도, 매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KB증권은 이렇게 발생한 손실을 자기 자본을 털어 메운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자전 거래는 채권 시장에서 관행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일각에선 채권 거래 특성상 자전 거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특정 증권사가 랩어카운트와 채권형 신탁 등에 편입된 채권을 펀드 수익률 관리 목적으로 매매해 돌려막기 거래를 하는 것이 용인됐던 셈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고객 돈을 임의로 굴려 손실을 봐 놓고, 이를 자전 거래로 메워온 오랜 관행 자체가 편법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증권사들이 랩어카운트 등 상품을 팔며 증권사 간 불법 자전 거래를 하는 관행은 과거에도 만연했다. 2016년엔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한화투자증권 등 3개 증권사가 불법 자전 거래로 무더기 적발됐다. NH투자증권은 5조5636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과 채권을, 미래에셋증권은 고객사가 맡긴 자산으로 2009년부터 5년 동안 2974회에 걸쳐 10조5935억원 규모를 자전 거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화투자증권 역시 2009년부터 4년 넘게 4351회에 걸쳐 8조7380억원에 달하는 기업어음(CP)과 예금, 채권 등을 불법으로 운용했다.

불법 자전 거래가 반복되는 배경엔 증권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꼽힌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암묵적으로 자전 거래를 용인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태가 불건전 영업과 내부 통제 실패 등의 이슈로 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KB증권 측은 불법 자전 거래 의혹에 대해 위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KB증권 관계자는 “새로운 고객의 자금이 입금되는 경우엔 직전 고객 자산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운용 자산을 시장에서 매수해 대응하고 그 외 만기가 도래하거나 환매를 요청할 경우 고객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해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KB증권은 만기 불일치 자산 운용을 부인하는 동시에, 유동성 지원 기준을 세워 중소형 법인 위주로 유동성을 공급했고, 단기 자금 유동성 문제로 급여 지급이나 잔금 납입 등이 어려운 경우 등을 먼저 고려했다고 전했다. KB증권 관계자는 “상품 가입 시 만기 불일치 자산 운용 전략에 대해 사전에 설명했으며, 고객 설명서에 계약 기간보다 잔존 만기가 긴 자산이 편입돼 운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 고지돼 있다”면서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 금리가 급등하고 CP시장 경색이 일어나자 고객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거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불법 자전 거래 연루 의혹에 대해 하나증권 측은 “현재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다. 결과가 나와 봐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해당 사안이 불거지자 금융당국은 KB증권과 하나증권의 채권 돌려막기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랩이나 신탁 시장의 불건전한 영업 관행에 대한 현장 검사에 들어간 상태로 그 동안 관행으로 이뤄지던 자전 거래나 파킹 거래(채권을 매수한 기관이 장부에 곧바로 기록하지 않고 증권사에 맡긴 뒤 일정 시간이 지나 결제하는 것) 등에 대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중이다.

심지어 관행이 업계에 만연해 있다고 보고 다른 증권사들까지 순차적으로 검사해 전방위 감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 23일 열린 ‘불공정 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 토론회’에서 증권 범죄에 직을 걸고 전쟁을 선포한다고 밝힌 뒤 이어지는 조사라 업계 긴장감은 더욱 더 높아지는 형국이다. 김진석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장은 “현재 검사 진행 중인 2개사 외에도 검사 대상으로 선정된 회사에 대해선 순차적으로 검사에 착수할 예정”이라며 “조사 결과 확인된 위법 사항에 대해 엄정 조치하고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근절하고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