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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거지방과 10만원짜리 빙수, 그 간극에 대하여

  • Editor. 천옥현 기자
  • 입력 2023.06.02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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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천옥현 기자] # 광경 1. 거지방과 무지출 챌린지

“현대사회 속 단비 같은 감각적 쾌락 추구 1200원.”

“그럴싸한 이름 붙이지 말고 솔직히 얘기하세요.”

“아이스크림 구매.”

소비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고, 채찍질을 당해야 하는 이곳,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거지방’이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으로 퍼지고 있는 거지방은 들어가기 위해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한 거지방의 사례가 유명해지자 거지방을 만들며 ‘절약놀이’를 자처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30대 초반 K씨도 최근 거지방에 들어갔다. 가장 유명한 방은 대기인원이 많기 때문에 지인들과 함께 새로 만들어 알음알음 사람을 채우고 있다. 그들은 매일 자신이 지출한 내역을 낱낱이 보고한다. 만약 생수를 구매하면 ‘삼다수 1000원’이라고 채팅창에 쓰는 방식이다.

그러면 채팅에 참여하고 있는 멤버들이 ‘수돗물을 마시라’, ‘집에서 싸 들고 다녀라’는 등 피드백을 한다. K씨가 참여한 방은 일주일에 한 번 본인이 얼마나 소비했는지 합산한다. 그리고 그중 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이는 방에서 쫓겨난다. 물론 거지방의 운영 방식은 채팅방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K씨는 거지방에 대해 “꼭 모임원으로부터 쓴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내가 소비한 내역을 인지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아끼는 걸 보면서 과소비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다. 심지어 같이 절약하니 재밌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해엔 하루에 쓰는 돈을 제로(0)까지 줄이자는 ‘무지출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무지출챌린지를 하는 이들은 냉장고를 털어 식사를 해결하고, 도시락을 싸서 출퇴근한다. 앱테크로 포인트를 모으는 건 무지출챌린저의 기본자세다.

무지출챌린지에 참여해 봤다는 J씨는 챌린지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버는 돈은 한정돼 있는데 소비는 날로 커지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아껴서 목돈 마련 시기를 당기려고 무지출챌린지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힌다.

하지만 J씨는 무지출챌린지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처음에는 미션을 하듯 재밌게 하고, 절약하는 데에서 오는 쾌감이 있었다”면서도 “그렇지만 한 달 하다 보니 사회생활 하기도 어렵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소비를 잠깐 통제해서 지출을 줄이는 데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평생 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거지방 검색하면 나오는 오픈채팅방 [사진=카카오앱 캡처]
거지방 검색하면 나오는 오픈채팅방 [사진=카카오앱 캡처]

# 광경 2. ‘한방’을 꿈꾸던 2030의 추락

20·30대 대출 잔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30대 이하의 대출잔액은 514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3년 전인 2019년 4분기 404조원에 비해 27.4%나 늘어난 금액이다. 30대 이하 대출 증가율이 다른 연령층과 비교했을 때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출자 1인당 평균 대출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계층도 20,30대였다. 이들은 은행과 2금융권에서 1인당 평균 7000만원, 5400만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3년 전보다 각 18%, 32%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빚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층이 된 것이다.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취업난과 집값 상승 등으로 청년 세대 좌절감이 커질 때 주식과 부동산, 암호화폐 가격 상승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청년들은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 대출)’을 자행하면서 유동성의 급물살에 올라탔다.

하지만 경기침체 우려와 금리 인상 등으로 그들이 꿈꾸던 미래는 사라졌다. 2021년말 약 3900조원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었던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1500조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1년에 3300선을 넘었던 코스피지수는 2500 언저리에서 횡보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과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하락을 기록했다.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벼락거지가 증가했다. 투자 시장에 불나방처럼 뛰어들던 2030들도 포함돼 있었다.

2020년에 비해 20,30대의 채무조정 신청자 수가 증가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2020년에 비해 20,30대의 채무조정 신청자 수가 증가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영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신청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0년에 비해 20, 30대 조정 신청자 수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무조정제도란 빚이 많아 정상적인 상환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환기간 연장, 분할상환, 이자율 조정, 상환 유예 등을 통해 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하는 제도다.

29세 이하 채무조정 신청자 비중은 2020년 11%에서 2023년 1분기 13%까지 확대됐다. 30대도 같은 기간 22%에서 23%로 증가했다.

최근 채무조정을 신청한 20대 S씨는 “생활비, 투자금 등으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렸는데 일까지 끊기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던 중 채무조정을 알게 돼 신청했다”며 “상환기간 연장과 채무감면을 받아 그나마 여유가 생겼다. 씀씀이를 줄이고 일을 늘리면서 재기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전히 프리미엄을 즐기는 청년들도 분명 존재한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지난 4월 팝업 레스토랑 ‘이코이’의 예약을 받았다. 이코이의 디너코스는 1인당 35만원이다. 거기에 와인 5잔을 곁들이는 옵션을 선택할 경우 추가금액 35만원이 더 붙는다. 1인당 70만원짜리 저녁인 셈이다. 런치도 기본 25만원에 와인 페어링을 선택할 경우 1인당 45만원이다. 다음달 15일까지 운영되는 이코이의 예약은 모두 마감돼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망고빙수도 여전히 인기다. 신라호텔은 애플망고 빙수를 지난해 가격에 비해 18.1% 오른 9만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포시즌스 호텔은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를 12만6000원에 팔고 있다. 여전히 주말에는 20~30팀이 대기를 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한 호텔관계자는 “경기가 나빠졌다지만 소비자 반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친구들과 함께 호텔에서 추억을 쌓고, SNS에 올린다거나 작은 사치를 원하는 트렌드가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와 와인 페어링 [사진=호텔신라 제공]
서울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와 와인 페어링 [사진=호텔신라 제공]

# 그렇다면 이들은 왜?

왜 한쪽에서는 소비를 절제하고, 다른 쪽에서는 소비를 극대화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가장 먼저 소득의 양극화를 짚을 수 있다. 고소득층의 경우 경제가 어려워져도 여유 자금이 있어 소비수준을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저소득층과 중간 계층은 이전의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없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부익부빈익빈 극화는 더 심해졌다. 통계청이 지난 25일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분기 소득 5분위 가구(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148만3000원으로 지난해보다 6% 증가했다.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 소득이 107만6천원으로 3.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소득 증가 속도가 2배 가량 빠르다고 볼 수 있다.

1분기 중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45배를 기록해 1년 전보다 0.25배포인트 증가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가구원 수로 나눈 소득으로 5분위 배율은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배율이 커진다는 건 빈부 격차의 심화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자료들은 많다. 소득 상위 10%의 점유율을 하위 40%로 나눈 팔마비율은 2019년 3.6배에서 2021년 3.9배로 커진 바 있다.

인하대 소비심리학과 이은희 교수는 “소비의 양극화는 경제적인 관점과 개인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절약모드로 가고 있다. 코로나 때 청년층이 많이 치던 골프 수요도 감소했다. 하지만 극소수의 소득이 많은 청년들과 부모를 잘 만난 이들의 소비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프리미엄 소비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은희 교수는 “개인의 관점에서는 물가가 적정 수준일 땐 사람들은 소비에 여유롭지만, 불황기에 사람들은 평소 절약하는 대신 원하는 것에는 집중해서 돈을 쓰곤 한다. 적은 소비에서라도 최고를 경험하고 싶어서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프리미엄 소비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SNS와 과시욕 [사진출처=픽사베이]
SNS와 과시욕 [사진출처=픽사베이]

혹자들은 SNS 영향으로 과시욕이 강해졌다고 말한다. 지난 3월 10일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발생한 대학생‧구직자‧직장인 등 924명을 대상으로 ‘경기 불황에도 명품, 호캉스, 오마카세 등의 소비가 늘면서 소비 수준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의견이 있는 데 이에 동의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중 32.9%가 매우 동의, 51.7%가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전체 응답자 중 80% 이상이 소비 수준이 높아졌다고 본다는 뜻이다. 그 원인으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과시, 모방 소비가 늘어남(35.3%)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어 △욜로 문화 유행(24.7%) △코로나로 인한 보복 소비(15.6%)라는 응답이 나왔다.

20대 P씨는 “옆에서 뮤지컬이나 비싼 음식점에 가는 걸 보자면 ‘쟤는 어디서 저런 돈이 나지?’ 싶으면서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비싼 음식을 예약한다거나 명품을 고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30대 L씨는 “SNS에 올리려는 과시욕과 보상심리가 더해진 현상이라고 본다. 돈 벌어봐야 집도 못 사고, 결혼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니 나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욕구가 점점 세지는 것 같다. 일종의 스트레스성 소비인 셈인데 쓰고 나면 돈이 없어서 스트레스 받는 게 문제”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소비충동은 사회계급의 수직적인 서열에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보상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특히 하층계급의) ‘과소비’ 갈망은 지위를 추구하는 요구의 표현인 동시에 이 요구의 실패를 체험한 데서 나오는 표현일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보드리야르는 소비를 기호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분류 및 사회적 차이화의 과정으로 분석했다. 소비가 단순히 사물의 소유나 위세의 기능만을 갖지 않고 표현의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들은 사물을 자기 집단에 대한 소속을 나타내기 위하거나 높은 지위의 집단을 준거로 삼아 자신의 집단과 구분하기 위한 기호로 소비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절약하는 사람이 10만원 짜리 망고빙수를 먹는다는 건 그건 얼음과 각종 과일로 된 빙수가 아니라 ‘여유로움’, ‘부유함’, ‘트렌디함’이라는 기호 가치를 소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인플루언서들이나 부자들과 같은 지위를 갖지 못함에 따라 느끼는 심리적 궁핍의 표현일 수도 있다.

20년 이상 유통업계에 재직 중인 40대 C씨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허세’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백화점 시장이 죽어가는 유럽, 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심리가 있다. 사회가 어려운 가운데 자신의 몸집을 부풀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한다.

“아, 필요를 따지지 마라!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한 거지라도 사치를 누리는 부분은 있는 법이다. 인간이 삶에 필요한 것 말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 너는 귀부인이지. 만약 옷이란 추위를 막는 것으로만 필요하다고 한다면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왜 필요하단 말이냐? 그러나 정말 인간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다.”

셰익스피어 리어왕에서 나온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청년들은 살기 팍팍한 시대에 따라 절약해야 하면서도 깊은 좌절감에서 벗어나고자 프리미엄 소비에 더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 글쓴이는? - 밀레니얼 세대의 돈 없는 청년. 내게 절약은 매일 포기하게 되는 다이어트와 같다. 어느 날은 ‘열심히 살면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며 희망적인 세뇌를 하다가도 다른 날은 ‘이렇게 모아서 뭐 하나’라며 불필요한 지출을 하고 자책한다. 그래도 프리미엄 소비는 놓칠 수 없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친구들과 계모임을 하고 있다. 내가 카푸어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빙수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 취재 후기 - 립스틱 효과라는 말이 있다. 경기 침체기에 작은 사치품 구매를 늘리고, 가구나 자동차와 같은 고가 소비를 줄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마케팅 용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불황기에 정서적 효용을 높일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주목을 받는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작금의 소비 양극화는 통제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작은 것이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청년 세대의 울부짖음이 반영된 결과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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