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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사망사고에 잇단 실형 선고, 건설사는 ‘노심초사’

  • Editor. 박대연 기자
  • 입력 2023.06.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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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박대연 기자]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국가공기업을 포함한 원청업체 대표들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받고 있다. 이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보다 중한 처벌을 받아 건설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일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IPA) 사장이 2020년 6월 인천항 갑문 수리공사 중 발생한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 당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해당 사고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에 발생해 산업안전보건법만 적용받았다.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 사장. [사진=연합뉴스]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 사장. [사진=연합뉴스]

최 전 사장은 “IPA는 공사를 총괄 관리하지 않아 건설공사 발주자에 해당할 뿐이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를 할 의무가 없다"며 "(IPA가) 도급인에 해당하더라도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고 고의도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갑문 수리공사 현장소장 A씨에게도 징역 1년을 선고했고 같은 혐의로 기소된 법인인 IPA에는 벌금 1억원을, 갑문 수리공사 하도급업체 2곳에는 벌금 5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최 전 사장이 사망사고가 발생한 인천항 갑문 수리공사의 시공을 총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로 법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발주처가 아닌 도급사에 근로자의 안전조치를 하게 돼 있다. 건설 현장에서 도급사는 시공사로, 발주처는 안전관리에 대한 의무가 없다. 그러나 법원은 1심 판결을 통해 외견상 발주처가 아닌 현장에서의 실제 지위를 따져 도급사로 판단했다. 특히 IPA의 주요 업무가 갑문의 수리, 관리 등이고 공사를 맡은 민간업체보다 자산규모가 크기 때문에 도급사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동안 법 조항에 따라 외견상 발주처는 처벌을 피했지만 최 전 사장이 법정구속 되면서 앞으로 발주처 역시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와의 규모, 역할 등을 따져 처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산업안전보건법의 본래 취지에 주목한 판결’ vs 경영계 ‘과도한 처벌’

공기업에서 벌어진 안전사고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례적인 판결로 노동계와 경영계가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건설공사 도급을 주된 업무로 하는 공공기관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상 도급인인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더 엄격하게 지워야 하고, 법원 역시 위험의 외주화라는 갑질이 산업현장에 만연하는 불평등한 산업구조 형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 산업안전보건법의 본래적 취지에 주목한 판결이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의 책임이 있는 자를 판단함에 있어 실행한 하청업체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부당한 해석결론’이라고 설명하며, 항만시설의 유지·보수 등을 본질적 사업으로 삼고 있는지, 안전관리조직과 예산, 시설 규모 등의 사정을 원청의 도급인 책임을 인정한 근거로 삼은 것은 기존의 관행적 해석과는 결을 달리하는 명쾌한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경미한 처벌이 일하러 나가는 근로자들에게 죽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두려움과 비장함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이번 판결문 구절을 인용하면서 중대재해와 관련한 검찰과 법원의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인천경영자총협회는 사망 사고가 최 전 사장 취임 후 불과 2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과도한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채수현 인천경총 이사는 “항만공사가 발주 당시 안전 관리비를 충분히 반영했고 이후 안전 점검도 진행한 것으로 안다”며 “이런 역할을 했는데도 발주처 사장까지 구속하는 것은 과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 관리를 책임져야 할 현장 소장보다 발주처 사장이 더 높은 형량을 받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렇게 발주처에 책임을 묻는 것은 공기업의 발주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건설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 놓인 타워크레인들. [사진=연합뉴스]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건설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 놓인 타워크레인들. [사진=연합뉴스]

‘건설업계 긴장’...중대재해처벌법에 미치는 영향은?

중대재해처벌법 없이도 높은 형량이 부과된 판결로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수사나 재판 동향, 그리고 정부의 대처는 여전히 모호하다.

삼표산업 사건이 발생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첫 사건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일 만에 발생한 양주사업소 채석장 붕괴 사고로 불구속 기소된 삼표그룹 총수는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1호 판결은 경기 고양시 소재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 추락사고로 법원은 온유파트너스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후 내려진 2호 판결은 한국제강 철강 제조 공장 하청 근로자가 떨어진 방열판에 끼여 사망한 사건으로 한국제강 대표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 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대재해로 수사에 착수한 총 229건 중 기소의견 송치는 52건(22.7%)이며, 내사 종결이 18건, 검찰에 기소의견을 달아 송치한 게 34건이다. 남은 177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이중 올해 1분기까지 검찰 기소한 사건은 14건에 불과하며 판결이 나온 건도 고작 2건뿐이다.

현재 정부는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산하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 TF 활동 기한이 6월 말까지기 때문에 마지막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개선안이 세분화돼 명확함을 갖추고, 속도를 높여 실효성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기준이 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자나 오너까지 직접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자금이 탄탄한 대기업과 달리 자금이 부족한 중견 건설사는 벌금과 오너 징역까지 겹친다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없이도 높은 형량이 부과된 이번 판결로 인해 건설사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모호한 책임 소재로 인해 기업 오너나 경영자에게 부담이 된다면,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와는 반대로 안전보건업무에 대한 경영진의 관심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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