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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문제는 '도둑맞은 집중력'이다(上)

  • Editor. 현명희 기자
  • 입력 2023.07.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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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현명희 기자] ‘집중맞은 도둑력’이 출시 하루 만에 매진됐다.

잘못 읽은 게 아니다. 집중맞은 도둑력이다. 도서 ‘도둑맞은 집중력’(저자 요한 하리)에서 ‘도둑’과 ‘집중’의 단어 순서를 뒤바꿨다. 집중맞은 도둑력은 도둑맞은 집중력의 페이크 커버(가짜 책 표지)의 이름이다.

비단 페이크커버만일까. 집중맞은 도둑력 매진 현상은 도둑맞은 집중력의 인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서는 도둑맞은 집중력을 거론한 게시글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됐다. 교보문고의 지난 한 달 인문 분야 월간 종합 베스트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가 언급된 횟수와 비교하면 도둑맞은 집중력이 10배나 많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지난 4월 28일 출간 이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위까지 오른 뒤로 지난 한 달 인문 분야 월간 종합 베스트 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등을 종합한 판매지수는 26만, 리뷰 총점은 9.6점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부제는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이다. 제목처럼 곳곳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로 집중력을 잃어버린 시대적 상황을 문제로 꼽고 있다. 다만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집중력이 감소했다는 지적은 줄곧 있어 왔던 것이라는 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부제로만 봐도 그간 거론되었던 내용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명이 ‘트위터 탈출 치트키’일 정도로 책 내용은 사람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다. 책에서 지나친 SNS 활동은 집중력 저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줄곧 강조해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지금, 집중력은 다시 화두가 된 걸까?

디지털 기기 중독에 따른 집중력 감소에 대한 지적은 늘 있어왔지만, 왜 유독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걸까? [사진=언스플래쉬]
디지털 기기 중독에 따른 집중력 감소에 대한 지적은 늘 있어왔지만, 왜 유독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걸까? [사진=언스플래쉬]

■ 알고 있지만, 어려운 통제

인간의 집중력을 과신하는 바람에 굳어진 하나의 행태가 있다면 바로 멀티태스킹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멀티태스킹이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뇌가 빠르게 재설정을 통해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옮겨가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메사추세츠 공대에서 두뇌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얼 밀러 교수의 말에 따르면 동시에 1~2가지에만 집중해 생각할 수 있는 뇌의 근본적인 구조 때문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알람으로 멀티태스킹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건, 갑작스러운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가 금세 초점을 스마트폰으로 향하게 만든다. 멀티태스킹이란, 좀처럼 집중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집중력 저하가 개인 삶의 질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명백하다. 집중력 저하를 유발하는 대표 사례인 멀티태스킹으로만 봐도, 초점의 ‘전환’이 자주 일어나는 사람일수록 일의 수행 능력이 떨어지며 속도가 느려진다. 또한 실수가 잦아지고, 깊게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탓에 덜 창의적으로 되며, 자신이 하는 일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스마트폰 이용 시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2019년에는 하루 평균 3시간이었으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2020년에는 외부 활동의 감소로 하루 평균 5시간으로 크게 증가해 2021년까지 유지되다가, 2022년에도 이보다 더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은 스마트폰 이용 시간과 더불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2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위험군’으로 분류된 23.6%의 사람 중 70.5%가 스스로 스마트폰 과다 이용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과의존 문제의 해결 주체는 ‘개인(65.5%)’이라고 가장 많이 응답했다. 다만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줄이려 할 때마다 실패한다’와 같은 ‘조절 실패’의 항목이 스마트폰 과의존의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드러나 개인 차원에서 통제가 어려운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장 줄리앙의 현대인 풍자 일러스트. [사진=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일러스트레이터 장 줄리앙의 현대인 풍자 일러스트. [사진=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 집중력 악화는 그들의 이익이 된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도 마찬가지로 집중력 감소의 원인을 대체로 개인 차원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의 습득 ▲수면 부족 ▲독서량 감소 ▲테크 기업의 전략 ▲스트레스 ▲잘못된 식단 등 총 12가지다. 다만 눈에 띄는 대목은 ‘테크 기업의 전략’에 관한 것이다.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 요한 하리는 테크 기업의 전략을 유일한 사회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하고, 전 구글 엔지니어 트리스탄 해리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것이 어떻게 스마트폰 이용 통제 실패를 불러오는지를 설명한다.

페이스북을 예로 들어보자. 트리스탄 해리스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계속해서 이용자가 온라인 공간에 머무르도록 할 뿐 이곳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로는 나가길 원치 않는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있지만,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 찾기’ 같은 버튼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만약 그런 버튼이 만들어진다면,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적은 시간을 보내게 될 테고 페이스북 주가는 곧 폭락하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는 구글 재직 당시 구글에서의 성공은 주로 ‘참여도’로 측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참여도는 즉 이용자의 시선이 상품에 머문 시간을 뜻한다. 트래픽(정보 이동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참여도가 클수록 매출은 증가하고, 이탈률이 높아질수록 수익은 감소한다. 매출에 직결되는 참여도가 구글을 비롯한 거대 테크 기업에게 성과를 위한 중요한 척도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다른 인물인 아자 래스킨은 2006년 스마트폰에서 ‘무한 스크롤(화면 하단에 닿으면 정보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 나타나는 것)’ 기능을 처음 개발한 디자이너다. 그는 웹 브라우저 엔진 파이어폭스에서 웹의 작동 방식에 최초로 무한 스크롤을 도입한 뒤 잠시나마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해당 기술에 의문을 느껴 직접 계산해 본 결과, 이 기능이 전체 인구 중 총 20만명이 넘는 사람들로부터 삶을 누릴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을 빼앗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테크 기업들의 주 과제는 ‘어떻게 하면 이용자가 서비스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기업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도 같다. 사실상 이용자 입장은 빠져 있다. 책의 주장대로라면 서비스 이용 시간을 줄였을 때 이용자의 집중력은 회복될 수 있겠으나 매출이 감소하고, 서비스 이용 시간이 늘어나면 이용자의 집중력은 떨어지겠지만 매출은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이용자는 스마트폰, SNS 앱 활동 등 디지털 기기 이용에서도 더 많은 통제 실패를 경험하게 된 셈이다.

주요 SNS 앱들이 도입한 '무한 스크롤' 기능은 이용자가 SNS에 더 많은 시간을 쏟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주요 SNS 앱들이 도입한 '무한 스크롤' 기능은 이용자가 SNS에 더 많은 시간을 쏟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 개인 차원의 노력, 디지털 디톡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진보한다 한들 계속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SNS 피로증후군’이란 것이 있다. SNS를 통해 과도하게 정보를 공유하면서 나타나는 피로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다수의 사람 중에서도 일부는 SNS 피로증후군에 의해 점차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들의 존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테크 기업들의 전략에 순응하기보다, SNS 앱 사용을 중단함으로써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15년에 SNS를 사용하는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3.8%는 SNS 피로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2017년에는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1.7%가 SNS 피로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이들은 SNS 앱 활동을 그만두기 위해 관련 앱을 삭제하거나 일정 시간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알림 기능을 끄는 등의 방식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SNS 앱 사용 중단은 실질적으로 집중력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까? 고려대 이은지 박사의 ‘SNS를 떠나는 사람들: 사용자의 특성과 SNS 피로감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SNS 사용을 중단한 사람들의 40.9%는 ‘집중력이 향상’했다고 답했다. 또한 32.8%는 ‘일이나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응답했으며, 28.6%는 ‘시간관리가 개선됐다’, 25.4%는 ‘자신의 생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답해 분명한 효과가 있음을 드러냈다.

SNS 앱 사용을 중단하는, 대세가 된 움직임도 보인다. ‘디지털 디톡스’다. 인체 유해 물질을 해독하는 ‘디톡스(detox)’와 디지털을 합성한 단어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행위를 뜻한다. 디지털 디톡스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중독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관련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더욱 확산돼 2012년에는 ‘디지털 디톡스’라는 이름으로 비영리 단체까지 설립이 된 바 있다. 또한 2014년에는 ‘디지털 디톡스 위크’라는 행사도 처음 개최됐다.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영국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는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34%였으며, 그중 60%는 그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2019년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응답자 28%가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 중 47%는 덕분에 ‘행복감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여성 H씨는 “매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느끼고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와 디지털 디톡스란 걸 알고 시도해 보게 됐다”며 “한 달간 SNS 앱 사용을 모두 중단해 봤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찝찝한 기분도 사라져 일상에서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가수 박재범 또한 웹 매거진 ‘하입비스트’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한 뒤의 삶을 “좋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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