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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깔린 술값 할인, 1000원 소주 마실 수 있을까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8.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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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요즘 음식점 소주 한 병 값이 5000~6000원, 압구정 로데오 등 서울 시내 음식점, 술집에선 1만원까지 치솟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술플레이션(술+인플레이션)’, ‘소주플레이션(소주+인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고물가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 진정을 유도하는 방안의 일환으로 소매점 주류 할인 판매를 허가하는 유권 해석을 내놓으면서 이젠 1000원 소주, 2000원 맥주를 사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주류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주류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달 28일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주류수입협회 등 주류 관련 단체에 마트·식당 등 소매업자가 소비자에게 주류를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 사항을 보냈다. 이 안내 사항을 통해 정상적인 소매점 주류 할인 판매는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놓으면서 애주가는 물론 주류·유통·요식업계 등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세무당국의 기본적인 방침은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덤핑 판매, 거래처에 할인 비용 전가 등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거래 방식이 아니라면 소매업자들이 술값을 자율적으로 정해 팔 수 있도록 빗장을 푼 것이다.

통상 국내 주류 제조업체의 330ml 병 기준 소주와 500ml 병 기준 맥주 공장 출고가는 각각 1100원대, 1200원대 수준으로 도매업자를 거쳐 소매업자에 공급되는 가격은 1500원대다. 국세청 유권 해석으로 소매업자는 선택에 따라 소주와 맥주를 1500원 이하에 판매해도 문제가 없는 셈이다.

국세청은 그간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에서 주류 소매업자 준수 사항을 규정하면서 주류를 실제 구입 가격 이하로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소매업자가 주류 가격을 구입가보다 싸게 판매하고, 손실분을 공급업자에게 받아 메우는 식의 편법 거래를 막기 위해서였다.

국세청이 이번에 밝힌 가이드라인은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 내수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류 시장 유통 및 가격 경쟁을 활성화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할인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의 후속 조치 성격이다. 국세청 관계자도 “주류 할인을 유도해 물가 상승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업체들의 자유 경쟁을 통해 주류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 편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술값 깎아 팔기의 길을 터줬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류업계는 유권 해석을 반기는 분위기다. 주류 가격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궁극적 취지에 공감하면서 주류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한 주류 관련 마케팅도 이전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그간 거래액의 10% 이내 경품을 제공하는 등 제한적이었지만, 이번 조치에 따라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가능해진 만큼 신제품을 알릴 여러 갈래의 길이 열려 소비자들에게 큰 폭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즉 소비자들은 할인이나 경품 등 혜택을 통해 주류 소비에 대한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주류업계 입장에선 주류 소비를 촉진시킬 하나의 방안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지난달 28일 정부가 발표한 ‘2023년 세법개정안’에 따라 맥주 및 탁주 등 주류 종량세에 적용된 물가 연동제가 폐지되면서 이번 조치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류업계에선 주세 인상으로 인한 가격 조정을 매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소비자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한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매점이나 일반 식당 등 가격 경쟁이 붙을 수 있다”면서 “물론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소비 진작이라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순 있다”고 밝혔다.

주류 유통 채널도 정부 방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대규모 유통망을 구축한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미끼 상품’으로 주류를 활용할 수 있게 돼 집객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셈법에서다.

이미 대형마트는 이벤트성 할인 쿠폰을 비치해 두고, 이를 제시하면 병당 100~200원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이젠 할인 폭을 더 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주류 할인 판매가 자유로워지면 자체적인 할인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오프라인 판매가 늘어나 판매량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고, 업체 입장에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주류만 구입하진 않으니 다른 상품 판매량도 함께 늘릴 기회”라고 분석했다.

술값 할인 경쟁은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음식점과 술집 등이 홍보 및 고객 확보를 위해 공급가격 이하로 더 싸게 판매하는 일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며 “공급자는 조금 힘들겠지만, 혁신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유통에서 창조적 파괴가 이뤄져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그것이 선순환으로 작용해 공급자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를 예로 들면 제조원가가 550원 정도고, 교육세, 부가세, 주세를 더해 출고가가 1180원이 되는데, 그 가격보다 낮게 팔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지침의 핵심이라는 평가다.

이 교수는 “계속 가격만 올리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게 되고, 오히려 공급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정책으로 가격 파괴가 가능해지고 소비자 혜택이 늘어나는 정책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자영업자는 이번 할인 판매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반쪽짜리 정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이미 대부분 식당에선 술값에 이윤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최근 오른 인건비와 가스료, 전기료, 임대료 등을 가격에 붙여 판매하기에 주류 가격을 인하한다면 음식값 인상이 불가피해 사실상 ‘조삼모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더불어 할인이 가능하더라도 상시 염가 판매는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도 “주류 판매는 주류도매상을 거치면서 술값에 마진이 더 붙어 업소에 납품된다”며 “이미 자영업자들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가정용보다 조금 더 비싸게 술을 받아 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술을 구매가보다 싸게 팔면 자영업자는 무조건 손해를 보는 구조인데 밑지는 장사를 할 자영업자는 없다”며 “물론 개업 초기 매장은 단기간 이벤트성, 프로모션 차원의 할인이 가능하지만, 상시 염가 판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번 정책의 실효성을 비판했다.

서울 시내 한 식당의 주류 판매가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식당의 주류 판매가 [사진=연합뉴스]

주류 도매업계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출고가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시장 경쟁을 위해 가능한 최저 납품가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만약 소매점이 가격 할인을 요구하면 이윤 감소도 커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 방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한 병에 500~1000원 같은 파격적인 할인은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수요층이 많은 주류는 할인 폭이 과도하면 매장 방문자가 늘어도 오히려 손익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소비자들이 술을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는 판은 깔렸지만 주류업체, 대형 유통업체, 도매업계, 자영업자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다. 당국 지침이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1000원에 소주 뚜껑을 따는 것도 가까운 시일 내에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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