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444일 인고 끝에 통산 76승. 투수 인생을 건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이후 서른여섯의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특유의 핀포인트 제구를 앞세운 역투로 복귀 3경기 만에 14년 전 박찬호가 세웠던 코리안 빅리거 최고령 선발승 기록까지 뛰어넘었다.

토론토 주관 중계 방송사 스포츠넷이 "빈티지(vintage) 류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로 ‘류풍당당’의 위용을 되찾으며 부활했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의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2023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홈경기에서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선발 마운드에 올라 5이닝 동안 안타 2개와 볼넷 2개만 내주고 2실점(비자책) 했다. ‘코리안 몬스터’의 건재를 알리는 주 무기 체인지업으로 삼진 3개를 잡는 역투에 토론토 타선이 호응하면서 11-4로 승리했다,

동산고 2학년 때 이후 18년 만인 지난해 6월 19일 생애 두 번째 토미존 서저리를 받기 전인 5월 27일 로스앤젤레스(LA) 에인절스전(5이닝 6피안타 2실점)에서 V자를 그린 이후 14개월여 만에 맛본 승리다. 2013년 미국 빅리그 입성 이후 개인통산 승수를 76승(46패 1세이브)으로 늘렸다. 평균자책점은 복귀전 7.20에서 불운의 2차전 뒤 4.00를 거쳐 이날 2.57으로 떨어졌다.

아울러 류현진은 36세 4개월 20일에 빅리그 선발승을 추가, 코리안 빅리거 최고령 선발승리투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2009년 5월 1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운드에 올라 친정팀 LA 다저스를 상대(6이닝 7피안타 2실점)로 35세 10개월 13일에 거둔 최고령 선발승을 6개월가량 뛰어넘었다. 박찬호가 이후 2010년까지 6승을 구원승으로 추가한 만큼 류현진으로서는 선발승의 나이테를 더 늘려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극복의 아이콘’이 아니라면 부활찬가를 부를 수 없었고, 나이를 역류하는 도전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었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던 류현진’으로 돌아온 게 고무적인 대목이다. 1년 넘게 손꼽아 기다려온 복귀전부터 3경기를 통해 위기 대응에 강한 야구지능으로 역경 극복의 스토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최대 고비는 직선타를 맞고 쓰러졌던 지난 8일 클리블랜드전. 복귀전인 2일 볼티모어전서 5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패배를 떠안으며 정상 재기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었지만, 복귀 2차전은 MLB 개인 통산 900탈삼진을 돌파하는 등 4이닝 ‘노히트’의 완벽투를 펼치며 건재를 알리던 참이었다.

하지만 4회말 2사까지 피안타 없이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호투하던 상황에서 오스카 곤살레스 타구에 오른 무릎 안쪽을 강하게 얻어맞은 류현진은 통증을 참고 1루 송구로 위기를 넘겼다. 시속 97.7마일(157㎞)의 강타구가 류현진을 쓰러뜨리자 외신에서는 “너무 잔인한 타이밍(MLB 닷컴)” "가장 불행한 야구선수일지도 모른다(야후스포츠캐나다)“ 등의 우려가 쏟아졌다.

LA 다저스에서 뛰던 2015년 5월 어깨 수술 이후 긴 재활 끝에 이듬해 7월 볼티모어전서 640일만의 복귀전에 나섰다가 5이닝도 못 채운 채 6실점 하며 패전의 멍에를 썼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던 위기였다. 당시 복귀전만 치른 뒤 그해 9월 팔꿈치 수술대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밀검진 결과 타박상으로 판정돼 생애 네 번째 수술 이후 ‘4전5기’ 재기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강타구에 강타 당한 것이 절실한 반전의 계기가 됐을까. 톱니바퀴 같은 제구력으로 강타 허용을 줄였다. 빅리그 빅피처의 경쟁력 척도 중 하나로 시속 95마일(152.9㎞) 이상의 빠른 타구인 강타(hardhit) 허용 비율(HH%)을 확연히 낮춘 것이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이날 컵스전에서 86구를 뿌린 류현진은 패스트볼(40구) 최고 구속이 147㎞ 나왔고, 체인지업(24구),커터(12구), 커브(10구)를 섞어 던진 4색 투구 패턴은 복귀 이후 비슷한 흐름이었지만 제구력이 압권이었다.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정타를 맞아 강타로 이어지는 비율도 줄어들었다. 이날 강타는 엿새 전과 같은 2개였지만 HH%는 20.0%에서 14.3%까지 떨어졌다. 복귀전서 자신의 한 경기 최다 수준인 10개의 강타를 얻어맞아 HH%가 52.6%까지 치솟았던 것과 견주면 비로소 예전의 정교한 컨트롤 수준을 되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시즌 한 경기만 출전했던 복귀전서 HH%가 44.4%로 치솟은 뒤 부상 불운으로 명예회복의 기회가 그해 주어지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반전의 기회를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경기 후  “류현진은 매우 놀라웠고  하드 컨택(강타 허용)을 제한했다”며 “부상 전에 보여줬던 모습을 복귀 후 세 번째 등판에서 보여줬는데,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는 쉽게 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찬사를 보냈다.

빅리거 11년차인 류현진은 다저스에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인 2018시즌 HH%를 28.8%까지 낮췄지만 토론토로 옮긴 첫해인 2020시즌에 41.6%로 오르더니 지난해엔 부상 전까지 44.1%로 높아졌다. 이번 복귀 2,3차전에서 보여준 낮은 강타 허용 수준을 앞으로 탄탄한 제구력으로 유지한다면 불혹을 향해가는 류현진의 관록투는 안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