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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왜 ‘억’ 소리 나는 지하철역명에 매달릴까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8.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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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이번 역은 OO은행 역입니다.”

금융권이 역명 병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와 카드사 등도 이름을 노출해 브랜드를 홍보하고, 주변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화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역명 병기는 지하철역의 기존 역명에 부역명을 추가로 기입해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서울교통공사 4호선의 ‘한성대입구역(삼선교)’, ‘회현역(남대문시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지역 교통공사들이 재정난 해결을 위해 기업에 역명을 파는 ‘역명 병기 유상 판매’ 사업을 시행 후 특정 브랜드나 기업명이 들어간 역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역명으로 신한투자증권이 병기된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 [사진=신한투자증권 제공]
부역명으로 신한투자증권이 병기된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 [사진=신한투자증권 제공]

특히 금융권에서 역명 병기 유상 판매 입찰에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투자증권은 서울시메트로 9호선 여의도역 역명 병기 유상 판매 입찰에 낙찰됐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23일부터 각종 노선도와 안내 표지판에 여의도역명 옆이나 괄호 안에 ‘신한투자증권’이 추가로 표시될 예정이다. 서울교통공사 5호선 여의도역은 지난해부터 이미 병행해 표기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2호선 을지로입구역은 낙찰 경쟁이 치열했던 곳 중 하나다. 을지로입구역 1·2번 출구는 하나은행 본점과 연결돼 있고, 5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엔 하나카드, 하나생명 등 하나금융 비은행 계열사들이 들어서 있다. 4번 출구엔 IBK기업은행 본점이 있다. 기업은행이 계약하면서 2016년 8월부터 ‘IBK기업은행’을 병기해 왔는데, 하나은행이 입찰에 성공해 지난해 9월부터 ‘하나은행’이 을지로입구역의 부역명이 됐다.

이밖에도 4호선 명동역이 지난해 9월부터 부역명으로 ‘우리금융타운’을 사용하고 있고, 9호선 샛강역과 국회의사당역은 각각 2020년 9월과 12월 ‘KB금융타운’, ‘KDB산업은행’을 부역명으로 갖고 있다. 2금융권 중에선 2·5호선 을지로4가역이 ‘BC카드역’으로,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은 ‘신한카드역’이라 불린다. 역명 병기 유상 판매 사업에 낙찰돼 전국 지하철 부역명에 들어가 있는 금융사만 해도 12개나 된다.

부역명 사용료는 역 위치와 중요도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최소한 억 단위의 금액이 붙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가만 해도 최소 1억원 이상인데다, 경매로 낙찰받는 방식인 만큼 경쟁자가 다수 붙는다면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뛰는 구조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을지로3가역의 신한카드가 8억7450만원, 을지로입구역의 하나은행이 8억원, 선릉역의 애큐온저축은행이 7억5100만원을 지불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데도 금융권이 부역명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브랜드 인지도 제고다. 국토교통부 철도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도시철도 여객수송 승차 인원 합계는 총 14억8179만명이다. 신한투자증권이 따낸 9호선 여의도역의 지난달 승차 인원만 하더라도 83만명 이상이다. 다수 이용객에게 기업과 기관 브랜드명을 홍보할 방법으론 제격이라 마케팅 효과를 고려하면 높은 비용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사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말 기준 재계약률은 약 90%에 달한다. 2017년부터 6년 간 1호선 종각역의 부역명을 사용했던 SC제일은행은 역명 병기 이후 브랜드 인지도가 3%포인트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밝혔다. 신한투자증권도 역사 인근에 증권사가 밀집한 여의도역의 이름을 활용하게 돼 브랜드 경쟁력을 진일보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이용객이 많은 역이라 브랜드 경쟁력 제고와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역명 쇼핑’ 열풍은 비단 금융권만의 얘기는 아니다. 역명 병기 사업 초기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대학이었다. 1호선 월계역, 4호선 상록수역, 7호선 중계역, 8호선 단대오거리역은 각각 인덕대학, 안산대학교, 한국성서대, 신구대학교로 역명과 함께 나란히 표기된다. 교육 기관은 대학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교육 학원 에듀윌은 2020년 학원의 메카 노량진역 입찰에 참여했으나, 지역 주민 반대에 무산된 해프닝을 겪은 바 있다.

대구 지하철은 병원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역명 병기 사업으로 기업이 병기된 19개 역 중, 병원만 15개나 된다. 자본력 있는 대학병원이 주로 차지하고 중소·신생 의료 기관 진입이 둔화된 서울과 달리, 대구에선 척추 등 전문 병원을 중심으로 지하철역명을 다수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해당 병원들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원 위치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지하철역 주변에 있는 지역 대표 병원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역명으로 애큐온저축은행이 병기된 지하철 2호선·수인분당선 선릉역 [사진=애큐온저축은행 제공]
부역명으로 애큐온저축은행이 병기된 지하철 2호선·수인분당선 선릉역 [사진=애큐온저축은행 제공]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브랜드 인지 효과는 수치로 확인하기 어려우나 소비자들이 자주 이동하는 장소에 금융사 브랜드 및 로고를 노출시키는 것이 해당 금융사에 대한 친숙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기업마다 홍보 예산에서 차이가 있다. 모든 기업이 참여할지는 불확실하지만, 대체적으로 역내 홍보 효과에 대해 관심있는 기업의 경우 입찰 참여 가능성은 있다”고 진단했다.

적자를 메우려는 교통공사와 홍보 효과를 노리는 기업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분에 역명 병기 유상 판매 사업은 계속해서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입찰에선 어느 기업이 알짜배기 역을 차지할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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