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직장어린이집 설치, 대체 뭐가 문제야?

  • Editor. 현명희 기자
  • 입력 2023.09.11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현명희 기자] 저출산이 심각한 가운데, 직장어린이집 미설치 기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무신사에선 한 고위 임원이 “어린이집 운영비에 비해 설치하지 않았을 때 내는 벌금이 더 싸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거세진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무신사는 오는 10월 신사옥 내 건축 예정이었던 직장어린이집 설치 계획을 전면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매년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이행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미이행 기업에 대해 명단을 공표해 오고 있다. 2012년부터 의무화가 된 이 제도는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 및 양성평등 정책 확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형 보육서비스 제공 등의 배경에서 출발한 것이다.

첫 시작은 1988년이었지만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의무 이행률이 낮아 11년 전부터 의무화되었고, 그 결과 2012년 74.3%였던 이행률은 2022년 91.5%까지 상승했다.

직장어린이집. [사진=연합뉴스]
직장어린이집.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초저출산’ 국가로 세계적으로도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관련 정책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제도가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당장의 눈에 띄는 결과는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론 직장어린이집 설치로 인한 근로자의 근무환경 만족도 증대, 자녀 양육 문제와 관련된 불안감 해소 등에서 더 나아가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기준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미이행 사업장 명단에는 총 27개의 기업이 포함됐다. 나노마이크로텍, 다스, 더블유씨피,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메가스터디교육, 비바리퍼블리카, 비즈테크아이, 신성통상, 쌍용정보통신, 씨젠의료재단, 에듀윌, 의료법인 거붕 백병원, 이와이컨설팅 유한책임회사, 주식회사 컬리, 코스맥스, 코스트코 코리아 등이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대상은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고용 사업장으로, 고용노동부는 이들 기업이 신청 시 최대 6억원의 설치비와 1명당 월 최대 60만원의 보육교사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몇몇 기업의 경우 여전히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어린이집 설치 의무 및 관련 조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며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고, 어린이집이나 보모 지원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체 어린이집 마련은 물리적 공간 확보 외에도 큰 규모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성장하는 기업 입장으로선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코스맥스 관계자 역시 본지와 통화에서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외부 다른 공간을 찾는다든가,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 중이지만 지역 특성상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위한 사내 공간 확보 및 비용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인 셈이다. 이 밖에 내부 수요가 충분치 않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혔다.

컬리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직원 구성, 연령대, 자녀 유무 등을 기반으로 고려했을 때 내부 수요가 많지 않았다”면서 직장어린이집 설치에 대한 고려 자체를 중단한 것은 아니란 설명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 올해에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무신사 관계자도 논란이 불거진 뒤 “초기에 도입을 검토했으나 실수요 자체가 7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돼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일시 중단한 것”이라며 “향후 수요가 증가할 시점이면 재개할 예정으로, 그전까지는 위탁 보육형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장어린이집을 설치 중이거나, 사업장 상시 근로자 특성상 보육수요가 없는 경우 등은 설치 의무 대상에서 예외에 해당해 미이행 사업장 명단에서도 제외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어린이집 명단 공표심의위원회’에서 소명이 부족한 경우 예외로 고려되지 않는다.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둘러싼 기업과 정부 부처의 시각이 상이한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미래연구본부 이승현 연구위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직장어린이집 설치 대상에 해당하더라도 실제 맡길 아이가 적은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기업으로선 어린이집 설치가 어려울 것”이라면서 “기업이 비용과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직장어린이집의 경우 보육 서비스의 질이 민간 어린이집보다 높은 수준으로 운영되는데, 최근에는 제2외국어 수업까지 교육 프로그램으로 신설하는 등 기업이 투자하는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어린이집과 관련해 발생했던 여러 부정적인 사건들로 보았을 때, 직장어린이집의 경우 모든 일을 기업 이름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므로 책임 소재 면에서도 설치를 고려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의 제도 이행을 위해선 결국 정부의 촘촘한 지원 및 제도 개선도 더욱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 책임으로만 보기엔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라며 “근본적으로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기업이 제도를 기꺼이 따를 수 있도록 직장어린이집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애로사항, 비용적 측면 등을 고려해 충분히 제도로서 뒷받침해 줘야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 이랜드, 우아한형제들 등 직장어린이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내부에서도 높은 만족도로 평가받는 기업도 있어 이들의 사례도 함께 들여다볼 만하다.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퍼시픽 어린이집’은 2004년부터 서울 용산구 본사, 연구원과 인재개발원이 있는 용인, SCM 생산기지인 오산 등 3곳에서 운영돼 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에 따르면 “직원들이 정말 좋아하는 복지 중 하나”이고, “어린이집이 워낙 잘 갖추어져 있어 직원들도 안심하고 자녀를 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랜드는 사내에서 코코몽 캐릭터를 활용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일반 가정어린이집보다 교육 체계가 잘 잡혀 있어 직원끼리도 서로 사내 어린이집을 추천하는 등 높은 만족도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직장어린이집인 ‘우아한2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내부 인테리어에도 각별히 신경 써 아이들을 배려했고, 직원이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한다. 업계에 따르면 매년 진행되는 자체 만족도 평가에서도 5점 만점에 4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여러 선례가 보여주듯, 성공적인 직장어린이집의 운영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단지 지금보다 더 많은 기업이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기업 서로가 조금씩 더 노력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국가적 위기인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더욱 합심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여성의 경우 계속해서 조직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우려면 정부와 기업이 아이들을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며 “그 첫 번째가 바로 직장어린이집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