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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성장 못 따랐던 트윈스 '인고의 29년', 그 끝은 동반 성공시대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3.11.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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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29년의 기다림!! 이제 때가 됐다! V3(세 번째 우승)!'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서 LG 트윈스가 KT 위즈를 6-2로 꺾고 1패 뒤 4연승으로 정상에 서는 순간 이 간절한 응원문구를 목에 건 한 LG 열성팬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열혈 청년의 꿈이 어느덧 이마에 주름이 팬 장년의 염원으로 이어졌으니 그 감격은 옛 트윈스 영광의 순간을 담아 잠실구장 전광판에 흐른 플래시백 영상의 끝자락까지 장식했다.

LG 트윈스 선수단이 23일 29년 만에 되찾은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앞세우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 트윈스 선수단이 23일 29년 만에 되찾은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앞세우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 선수단은 트윈스의 상징과도 같은 '유광 점퍼'를 입고 노랑 스카프를 흔드는 팬들에게 큰 절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진 시상식에서 구단주인 구광모 LG 그룹 회장은 "세계 최고인 무적 LG 트윈스 팬 여러분,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드디어 우승했습니다"라고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 보고'를 했다. "29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변함없이 LG 트윈스를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우렁찬 인사가 이어지자 트윈스 팬들은 길고 긴 '희망고문' 탈출을 자축하는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구단주의 감사 인사는 고(故) 구본무 선대 LG그룹 회장이 뜨거운 야구사랑에도 생전에 이루지 못한 'V3의 한'을 풀어준 데서 의미가 각별하다. 올해 가을잔치 전부터 회자되던 구본무 트윈스 초대 구단주의 야구 유지를 마침내 받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초대 구단주로서 1990년 프로야구 원년 팀인 MBC 청룡을 인수해 LG 트윈스를 창단하자마자 우승하고 1994년에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신바람 야구'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이후 정상에서 점점 멀어졌다. 오키나와 캠프가 끝난 뒤 아와모리 소주로 건배하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구 선대 회장은 1995년 시즌을 앞두고 "또 우승하면 이 소주로 축배를 들자"며 오키나와산 소주를 사두고 구단에 보관토록 했고, 1998년엔 "우승하면 KS MVP에게 전달하라"며 롤렉스 시계를 구입해 구단에 전달했다. 이제 5경기에서 3홈런 8타점으로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시리즈 MVP에 뽑힌 주장 오지환과 쌍둥이 전사들이 그 유품을 나누게 됐다.

구 선대 회장이 작고한 지 5년여가 흐른 뒤에야 일군 세 번째 천하통일. 그 도전은 LG그룹 역사의 변곡점에서 번번이 힘을 잃었을 만큼 얄궂은 운명이 따랐고, 팬들은 그만큼 오랫동안 속을 태워야 했다.

두 번째 우승 이듬해인 1995년 럭키금성에서 LG로 그룹 명이 바뀌면서 새출발했지만 트윈스는 3위에 머물렀고 1997, 1998년 한국시리즈에선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LG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던 2003년부터는 아예 가을야구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면서 암흑기를 맞았다. 프로야구계 안팎에서 흑역사를 대표하는 '비밀번호'처럼 내려오는 ‘6668587667'은 2012년까지 10년 동안 이어진 트윈스의 초라한 순위다.

2013시즌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진출해 3위까지 올라선 뒤로는 자신감을 점차 끌어올릴 수 있었다. 특히 구광모 회장이 구단주로 취임한 2019년부터는 가을야구의 단골손님이 됐다. ’4443‘의 4년 성적표는 마침내 올해 통합우승으로 대반등했다.

지난해 말 숙원을 이루기 위해 LG 14대 사령탑으로 영입한 염경엽 감독이 한 시즌 만에 정상을 이끈 것은 LG그룹 성장동력 변화와 맞물려 상징하는 바가 크다.

29년 전 태평양에서 LG에 우승트로피를 내준 프로선수로서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프런트, 코치 등을 거쳐 넥센(현 키움) 감독으로 지도자 인생을 활짝 연 그였다. 그래도 야구계 안팎에서는 '2% 부족한 우승 청부사'로 평가받았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 2019년 SK를 이끌며 1위 수성을 그르치는 등 실패도 많이 맛봤기 때문이다. 반면 승부 스트레스로 쓰러지기도 했지만 미국 유학을 통해 나름대로 '실패학'을 연구한 간절함이 쌍둥이 체질 개선을 불어올 수 있을 것이란 판단도 선임 배경의 하나로 꼽혔다.

그 기대에 부응해 스카우트와 운영팀장, 수비코치를 맡았던 친정 LG로 11년 만에 귀환한 염 감독은 '염갈량'이라는 별명답게 다채로운 지략을 펼치며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차례로 석권했다. 9년 전 실패했던 경험을 되짚어 고정관념을 깨고 약한 선발 투수진을 '벌떼 불펜'으로 메우는 실용적인 전략으로 성공시대를 연 것이다. 불펜 투수 7명을 모조리 투입해 한국시리즈 2, 3차전 역전극을 잇따라 펼친 게 대표적인 우승 요인으로 평가된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 3년 만인 2021년 LG전자 내에서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던 스마트폰 사업을 과감히 접은 선택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 먹거리 확대라는 목표 아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원을 재배치하고 핵심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실용주의가 LG그룹의 성장 동력을 높이고 있다.

트윈스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한국시리즈 시상식에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략만으로 성공을 이뤄낼 수는 없다. 올시즌 트윈스의 캐치프레이즈는 정규시즌에 '승리를 향해, 하나의 트윈스!'였고, 한국시리즈에선 '하나가 되자(Be The One)'였다. 지난 28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하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면서 '원팀'으로 뭉쳐 KBO리그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야구'. 시즌 초반부터 염 감독은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주문하며 '뛰는 야구'를 밀고 나갔는데, 이는 하나의 목표 아래 선수들의 도전의식을 높여준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해까지 큰 승부처에만 가면 약해지는 팀 체질이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받아 왔는데, 올시즌엔 포기를 거부를 하는 도전정신이 원팀 구축에 녹아들면서 우승DNA가 다져진 것이다.

포기를 모르는 집념은 LG가 글로벌 탑티어 배터리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올해 초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뉴스룸에 공개한 자사 배터리 개발 역사에 따르면 구본무 선대 회장은 충전식 배터리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인물로 2차전지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구 회장이 1992년 영국 출장길에서 2차전지 샘플을 챙겨와 연구를 지시하면서 K-배터리 개발은 시동을 걸었지만, 수년간 투자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지 않자 사업철수를 주장하는 의견이 대두됐다. 

하지만 구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하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고 임직원을 지속해서 독려했다. 그 성과는 20여년이 흐른 뒤 세계 유수의 모빌리티 기업들의 구매 쇄도와 합작공장 설립 제의 러시 등으로 나타나고 있고, LG는 현재 K-배터리의 대표주자로 글로벌 성공가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LG그룹의 성장 역사에 뒤처졌던 트윈스는 뒤늦게나마 성공시대를 열었다. 염 감독은 팬들 앞에서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내년에도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염 감독이 스카우트로 2009년 발굴해 우승반지를 처음 끼게 된 '원 클럽맨' 오지환은 인고의 시간이 담긴 시계 선물에 대해 "선대 회장의 유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단 구광모 회장님께 드리겠다. 롤렉스 시계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집념의 '최강 LG' 성과를 확인한 쌍둥이 선수단이나 '무적 LG'의 자긍심을 뒤늦게 찾은 팬들이나 이 시계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신바람 야구'의 부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공유하는 상징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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