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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UP] 신용사면 선심에 멍드는 2금융권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4.02.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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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정부는 ‘군 정치 댓글’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총 980명에 대해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지난 6일 밝혔다. 갈등을 일단락하고 국민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게 이번 특별사면 배경이다.

사면은 매번 비슷한 ‘국민 통합 계기’라는 모토에서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논란을 만들어냈다. 2022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두고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내 편 챙기기’라고 비판했고, 2017년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정봉주 전 의원의 특별사면을 두고 ‘특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내 편 챙기기’에서 비롯된 사면은 국민 통합의 계기가 아니라 불화와 분열의 찬바람만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서초구 교대역에 붙어 있는 개인회생·파산면책 전문 법무법인 광고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교대역에 붙어 있는 개인회생·파산면책 전문 법무법인 광고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또 한 번의 사면을 예고했다. 소액 연체자를 대상으로 오는 5월까지 신용사면에 나서는 것. 금융업권 협회·중앙회, 신용정보원 및 12개 신용정보회사(CB)는 지난달 15일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앞서 정부와 국민의힘이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표한 ‘신용 대사면’의 후속 조치다. 정부는 이번 사면으로 최대 298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본다.

신용사면이란 빚을 다 갚은 채무자들 연체 기록을 삭제해 줘 정상적인 금융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조치다. 본래 대출금이나 카드 대금 등을 제때 갚지 못하면 연체 이력이 남아 금융사들에 공유된다. 그런데 신용사면은 연체 이력을 다른 금융 기관이 공유받지 못하게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와 고금리 기조 속에서 개인들이 채무의 짐을 지고 있었음에도 경제 버팀목이 된 만큼 상황이 어려운 채무자들의 연체 기록 삭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죽는다는 속담처럼 정부의 신용사면 결정에 금융권은 죽을 맛이다. 연체자와 금융권 모두 ‘윈윈(win-win)’이 돼야 하지만 한 쪽 챙기기로 인해 한 쪽의 희생이 따르는 형국이라 사면 취지인 정상적인 금융 회복과 통합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정부는 기대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신용사면을 통해 연체 이력이 삭제되면 개인의 신용점수가 상승하고, 이를 통해 신용카드를 정상 발급받거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금융 취약계층이 정상적 경제 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는 게 정부가 의도하는 바다. 연체 이력 때문에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금융권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2금융권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1금융권과 비교했을 때 고신용자보다 취약 차주를 주 고객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저신용자의 소비 능력과 상환 능력이 저조해 실적 개선 효과는 적은데 연체율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묘책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2금융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등으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리스크로 연초부터 긴장 상태가 이어졌고, 상생금융으로 재정 부담과 건전성 우려가 커졌다. 여기에 신용사면까지 겹치니 일각에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으로 결국 2금융권 부실 위험과 부담만 키우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우선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저축은행 등 2금융권만 이용 가능했던 저신용자가 1금융권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신용사면 조치로 약 25만명이 은행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인 863점을 넘게 돼 1금융권 대환대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선 ‘정상적 경제 활동으로 복귀’라고 하지만 저축은행에선 ‘고객 이탈’이나 다름없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차주만 남게 되는 가운데 대출 한도가 확대돼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또한 부작용으로 지목된다. 금융당국은 차주 250만명의 신용점수가 701점으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업계에서는 신용점수 700점대 차주가 대환대출을 시도하거나 대출 한도를 늘릴 것으로 관측했다. 이밖에도 신용평가 모형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리스크 관리 체계 보강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연체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점수에 반영되지 않으면 저축은행들은 부실 위험을 가려내기 위해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저축은행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단연 고객 이탈”이라며 “우량 차주가 아니더라도 중신용자들이 많은데, 이런 고객이 1금융권으로 이동하는 등 변동이 많을 것이라 (업계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드사들은 차주 250만명의 신용점수가 701점으로 상승하면서 신규 고객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최저 신용점수 645점 이상을 대상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는데 점수 미달로 발급이 불가했던 고객들이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충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저신용자들은 상대적으로 고신용자보다 소비가 적어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들이 우량 차주 및 고객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저신용자들이 결제하는 금액으론 카드 결제 수수료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시원찮고 시장점유율(MS)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셈이다. 오히려 카드사들은 상승하는 연체율을 막기 위해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하고, 앞으로 건전성 관리만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내비친다. 이미 연체 이력이 있는 고객이 신용사면으로 신규 카드를 발급받으면 재차 연체 늪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냉정한 판단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8개 카드사(KB국민·NH농협·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카드) 연체액은 2조7000억원을 넘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53.1% 급증한 규모다. 평균 연체율도 전년 동기 대비 0.62%포인트(p) 상승한 1.6%를 기록했다. 연체율 증가는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으로 이어지는 만큼 실적에 악영향을 준다.

일각에선 2003년 대규모 신용 불량자를 양산한 ‘카드 사태’가 재현될까 노심초사다. 카드 사태는 경기 진작을 위해 카드론 한도액을 푼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카드 대금을 값을 능력 없는 차주들에게까지 카드를 마구잡이로 발행해 준 결과 신용불량자를 대거 양산했고, 상환을 못한 차주들 탓에 카드사들이 망하기 시작했다. 연체자의 대환대출 이용과 원활한 신용카드 발급을 위해 신용사면에 나서는 이번 조치와 유사한 배경이다.

카드업계에선 연체율 증가 등 우려를 내비치면서도 이번 조치가 카드 사태처럼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어쨌든 소액이라 하더라도 연체 이력이 있는 고객들이다 보니 다시 연체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하지만 신용등급이 수직 상승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1~2달 뒤 신용도가 좋아지거나 하는 등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만약 카드 사태처럼 번지려면 카드 발급이 안 되거나 대출이 아예 안 나오는 고객이 갑자기 1억~2억원씩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도 “카드사로서는 장·단기 연체 기록 삭제로 고객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어렵게 된 점이 연체율 증가 등 리스크 관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차주의 연체 상환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대안 정보 활용을 지원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혀 금융권을 고려하지 못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나오자 정부의 이번 신용사면은 또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괜히 ‘생색은 정부가 내고, 위험은 금융권이 지는 금융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신용사면은 과거 정부에서도 단행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가 ‘260만명 신용사면’, 박근혜 정부는 ‘322만명 빚 탕감’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도 2021년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신용사면을 단행했다. 하지만 효과에 대해선 물음표가 남는다. 이명박 정부 때 신용사면 대상자 72만명 중 실질적으로 혜택을 본 수혜자는 49만여명, 박근혜 정부는 66만명 중 58만여명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신용사면 대상자와 연체이력정보 삭제 효과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정부의 신용사면 대상자와 연체이력정보 삭제 효과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효율성도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신용사면을 통해 조정된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늘어난 대출은 다시 연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2금융권이 이번 조치가 당국 의도와 달리 중저신용자 차주가 도리어 피해를 입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연체가 발생한 부실 차주들이 연체액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다. 또 서민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소액 연체자에 대한 정보 말소만으론 골목상권 활성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아울러 총선을 앞두고 남발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금융 거래의 근간인 ‘신용’에 대한 관심과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신용점수가 올랐다고 차주 상환 능력이 높아지지 않는 거품 현상으로, 대출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근간인 신용점수가 왜곡돼 이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전적으로 금융권 몫이다.

구제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298만명의 연체 정보는 사라지지만, 이로 인해 2금융권에 생긴 멍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포퓰리즘, 선심에 의해 작동되는 신용사면이 과연 건전한 회복을 위한 기회일지, 아니면 한 쪽에 일방적인 짐을 전가하며 신용질서 근간을 흔들 위기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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