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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19만원' 거수기 사외이사, 증원·여풍이 해결책?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4.03.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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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반대하는 분, 계십니까. 없으면 19만원 받아 가시면 됩니다.”

기업의 의사 결정과 경영 활동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여전히 ‘거수기’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보수를 받아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5대 금융지주 [사진=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금융지주 제공]
5대 금융지주 [사진=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금융지주 제공]

지난 10일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가 공시한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모두 37명의 사외이사가 각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금융그룹별 인원은 KB 7명, 신한 9명, 하나 8명, 우리 6명, 농협 7명이고, 이들은 각 금융지주가 개최한 15차례, 14차례, 11차례, 14차례, 14차례 이사회에 참석했다.

결의 안건으로 따지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총 68차례 이사회에서 162건을 논의했다. 하지만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정·조건부 가결된 3건을 포함해 모두 전원 찬성으로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최근 금융권은 홍콩H지수(항셍중국 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손실과 해외 부동산 관련 대규모 손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사외이사들은 금융그룹 전반의 각종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제때 감시·인식·측정·통제해야 하는 리스크 관리 위원회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데 그쳤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8회 위험관리위원회’에서 이용국 위원장이 ‘2023년 3분기 평가 보고’ 사항과 관련해 H지수 기초자산 기반 ELS 상품 현황을 물었고, 하나금융은 같은 해 ‘제4차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첫 번째 안건으로 ‘미국 및 유럽 상업용 부동산 대체 투자 점검 결과’를 보고했는데 이마저도 ‘특이 사항 없음’ 또는 ‘특이 의견 없음’으로 기록됐다. 일각에선 금융 리스크 이슈가 불거진 것은 사외이사진의 견제 및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에 그치면서도 고연봉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 각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평균 근무시간·보수는 KB금융 479시간·8357만원, 신한금융 437시간·8322만원, 하나금융 360시간·7285만원, 우리금융 357시간·6590만원(지성배 이사 무급 제외), 농협금융 305시간·5701만원이다. 이에 따른 평균 시급은 약 19만원으로 계산됐다.

이러한 논란에 대한 반박도 있다. 이사회 전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치기 때문에 이사회 100% 찬성이 거수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금융지주들은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이사회 구성과 기능 변화에 나서는 중이다. 전체 사외이사 수를 늘리고, 여성 비중을 확대하려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의 움직임이다.

KB금융은 기존 여성 사외이사인 권선주 이사를 임기 1년의 중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해 여성 비율을 유지하기로 했다. KB금융은 2020년 금융사 중 최초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고, 지난해 3월부터는 국내 금융지주사 최초로 3명의 여성 사외이사가 재임하면서 여성 비율을 42.9%까지 확대했다. 신한금융도 지난 4일 여성 이사를 2명에서 3명으로 증원하는 추천안을 발표하고 송정주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진 독립성이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를 8명에서 9명으로 확대했고, 우리금융은 2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함으로써 기존 6명이던 이사회를 7명으로 보강하는 동시에 성 다양성을 높였다. 농협금융은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인원 변동 없이 사외이사 수와 여성 비율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안건을 올리기 전 이미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면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부결시키고, 안건을 다시 올리고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기 때문에 사전 과정이 반복된다. 마치 안건에서는 다 찬성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거수기 논란을 해명했다. 또 사외이사 증원 및 여성 비율 확대에 대해서 “여성 사외이사 비율을 (당국에서) 40% 이상 권고하고 있다. 지배구조 관련해서 모범관행(베스트 프랙티스)를 수립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금융사들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평균 연봉 [사진=연합뉴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평균 연봉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사외이사 증원과 여성 비율 확대가 거수기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회의적 시각도 나오고 있다. 금융지주들이 사외이사 수를 늘리고 여성 비중을 높이는 건 금융당국 압박 때문이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장에서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선 독립성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금융권 사외이사진은 대부분 교수 및 연구원 등 학계에 편중돼 있어 전문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실제 신한·우리·농협 금융은 여성 사외이사 전원이 학계 출신이다. 일부 교수 출신 사외이사는 통상 기업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지속적인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경영진에 과도하게 협조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지난해 각 금융지주 사외이사 대다수는 전문성·기여도 등에서 ‘최우수’ 또는 ‘최고 수준’ 평가를 받았다. 사외이사 평가는 주로 외부 평가 없이 자기 평가 및 동료 평가 방식으로 ‘자화자찬식’, ‘제 식구 감싸기식’ 평가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아무리 숫자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을 것이란 수위 높은 비판과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지주 사외이사 개혁을 위한 첫 발은 뗐지만 거수기 오명을 벗기엔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고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해 시간이 꽤 걸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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