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엠바고, 아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5.04.15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향신문 덕분에 엠바고가 모든 사람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될 듯하다. 일반인은 평소 관심도 없고 의미는 더더욱 몰랐던 엠바고. 이른바 ‘언론고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나 기자들의 귀에나 익숙하게 들리던 엠바고가 고인이 된 성완종 전 회장과 진보 성향 논조의 기사나 사설을 많이 쓰는 경향신문에 의해 음지에서 양지로 성큼 걸어 나오는 형국이다. 엠바고라는 외래어가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고 시대 변화에 따라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크게 흥미로울 듯하다. 엠바고의 역사는 매우 깊다.

▲ 성완종 리스트 후폭풍으로 '엠바고'란 말이 일반인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본래 엠바고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됐으며 그 본디 차단, 폐쇄 등을 의미했다. 상업적인 용어로 쓰일 때 엠바고는 특정 국가나 국가군(群)에 대하여 부분적 또는 전면적인 상업과 무역의 금지를 의미했다. 엠바고는 또한 힘이 있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대해 자국의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서 취하는 외교적 수단을 지칭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엠바고는 경제 제재와 비슷한 뜻으로 통용되고 통상적으로는 무역을 가로막는 합법적인 장벽으로 간주된다. 엠바고는 전쟁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봉쇄(blackade)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엠바고와 달리 봉쇄는 특히 항구 등을 차단하는 것을 의미하며 무력 사용을 염두에 둔 단어다.

역사적으로 엠바고의 대표적인 경우는 베트남 전쟁 때였다. 1964년 8월 7일, 미 공군 폭격기들이 북베트남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시작된 미국-베트남 전쟁은 10년간 이어졌고 양측이 80만면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이때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엠바고는 지난 90년대 중반까지 긴 세월 동안 이어졌다. 이제 양국 호혜관계가 지속돼 베트남은 엠바고가 걸렸던 시절과는 딴판으로 큰 성장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초에는 호치민시에 처음으로 맥도널드 가게가 문을 열어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에 앞서 미합중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금지 엠바고를 결정해 그 유명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걸프전 때에도 엠바고가 발동이 됐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에 경제제재를 취했고 이라크가 금수조치(엠바고)를 위반하는 것을 막기 위해 페르시아만에 해군을 풀어 이라크를 봉쇄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한편 그런 엠바고와 관련해 미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세계 3위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를 손안에 넣기 위한 전쟁이었음을 실토한바 있다. 요즘 엠바고는 단순히 특정 시점이나 조건이 만족될 때까지 보도를 유예하는 것을 말하며 국익이나 대통령 등 VIP 보호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 부시 대통령 행보에 대한 엠바고는 유명하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2003년 추수감사절 때 이라크를 방문했는데 보도진은 경호문제를 이유로 엠바고 요청을 받았고 수행기자들은 부시가 이라크에서 출국할 때까지 엠바고를 지켰다. 부시의 이라크 방문에 대해 한 건도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보도 유예기간이 끝나자 일제히 기사를 냈다. 경향신문 덕분에 엠바고가 크게 꽃을 피우는 형국이다. 경향신문은 15일자 1면을 통해 미리 예고했던 엠바고 기사를 보도했다. 내용은 예상했던대로 성완종 리스트 관련이었다. 경향신문 엠바고 기사 요지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4월 4일 오후 4시 30분' 재보선을 준비중이던 이완구 후보의 부여 선거사무실로 찾아가 돈이 담긴 '비타500 박스'를 전달했다는 측근의 주장이었다. 이대한기자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