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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폭동, 화근은 '차별'과 '격차'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5.04.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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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볼티모어 폭동 사태가 1992년 LA 흑인 폭동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 볼티모어 폭동과 LA 폭동은 출발점부터가 너무도 비슷하다. 복수의 경찰이 한 흑인 청년을 무자비하게 검거하는 과정이 문제가 돼 '흑인 인권 묵살'과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흑인들이 들고 일어나 폭동으로 비화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번 볼티모어 폭동 사건도 LA 폭동 사건의 단초가 된 것처럼 특별한 중죄인도 아닌 흑인 청년 한명을 경찰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검거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더구나 이번 볼티모어 폭동 사건은 문제의 흑인 청년이 검거 과정에서 허리를 심하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응급조치를 미뤘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일주일여만에 사망한 만큼 흑인들이 분노할 여러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번 볼티모어 폭동처럼 1992년 LA 흑인 폭동은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청년의 사소한 법률 위반 행위에서 출발했다. 흑인 청년 한명이 당시 현대자동차가 만든 엑셀(아반떼의 전신) 승용차를 몰고 과속으로 달리다 경찰의 정지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도주한게 시발점이었다. 결국 추격전 끝에 백인 경찰들은 흑인 청년을 붙잡았고 그를 차에서 내리게 한뒤 사방에서 집단 구타를 가했다. 이 장면이 우연히 카메라에 포착돼 지역 방송을 통해 방영되자 흑인들이 들고 일어나 한동안 LA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든 사건이 저 유명한 LA 흑인 폭동 사건이다.

볼티모어 폭동 사건 역시 경찰이 지난 12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내에서 프레디 그레이라는 이름의 27세 청년을 불심검문하고 체포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체포 당시 경찰의 거친 제압에 그레이는 허리를 심하게 다쳤고, 즉각 응급조치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30여분이나 그를 이송한 뒤에야 응급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그레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체포 1주일만에 사망했다.

볼티모어 폭동이 본격화된 것은 27일 볼티모어 시내의 한 교회에서 장례식이 치러진 직후 수시간만의 일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장례식이 열리는 동안 스크린에서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등의 항의성 문구가 등장했다.

이에 자극받은 흑인들의 분노는 곧바로 볼티모어 폭동으로 이어졌다. 볼티모어 폭동으로 인해 시내 곳곳에서 투석전과 방화 약탈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던 경찰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볼티모어 폭동이 격화되는 양상을 이어가자 주 정부는 즉각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 방위군 1천여명을 투입하는 한편 휴교령과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볼티모어 폭동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메릴랜드주에서는 청소년 야근 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누리꾼들은 "볼티모어 폭동, 문제는 늘 인종차별이로군." "볼티모어 폭동, 왜들 그러고 살까?" "볼티모어 폭동에 한인 교포들은 괜찮으려나" "볼티모어 폭동,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되어가고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네." 등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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