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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자생지 묻지 말라 전해라'는 해오라비난초!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1.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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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비난초 =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Habenaria radiata (Thunb.) Spreng.

짧지만 강한 추위가 유난스러운 겨울입니다. 동백꽃과 제주의 수선화 등 엄동설한에 피는 야생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겨울 꽃 타령을 하자니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도 한편에서 고개를 듭니다. 그 와중에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그 반대랄 수 있는 한여름 삼복더위에 피는 해오라비난초를 소개해보자는 것이지요. 무더위를 떠올리며 살을 에는 강추위를 이겨내 보자는 취지입니다.

 

철망 넘어 비상을 꿈꾸는 해오라비난초. 자생지 훼손을 걱정하는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보호 철망을 두른 한 자생지에서 해오라비난초가 꽃잎을 활짝 열고 멋진 날갯짓을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야생난초 중 백미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관상 미가 뛰어나기에, 다시 말해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숱한 이들이 달려들어 자생지가 순식간에 파괴되기 일쑤여서 제철에는 내놓고 공개하기가 저어되기에 지금이 해오라비난초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알리는 적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피어난 해오라비난초. 새들이 군무를 하듯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해오라비난초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분명 한낮 카메라에 꽃을 담아 왔는데, 그날 저녁 사진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기니 모니터 안에서 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그것도 명품 고려청자 매병에 새겨진 학을 똑 닮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우아하게 춤을 춥니다. 해서 “하~ 알 수 없는 조화로다”라고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거무튀튀한 해오라기의 박제된 모습. 흰색 꽃의 해오라비난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해오라비난초는 중, 남부 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꽃을 피웁니다. 7~8월 그늘 한 점 없는 습지에서 날아오를 듯 순백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되받아칩니다. 지독하게도 여름을 좋아하고, 당당하게 여름을 이겨내는 멋진 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지독한 폭염도 맞서 이겨내건만, 사람의 손길·발길만은 피하지 못합니다. 몇 해 전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줄지어 찾았던 자생지를 그 다음 해 다시 찾아갔는데, 단 한 송이의 꽃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꿈속에서도 만나고 싶소’라는 꽃말처럼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자생지도 개체 수도 많지 않고 사람의 손을 타기 십상이어서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가 단위 멸종위기종 A급으로 분류되어 있을 만큼 각별한 보호가 요구되는 희귀종입니다.

 
 
해오라비난초의 환상적인 날갯짓. 보면 볼수록 꽃의 형태가 식물이라기보다는 조류에 가깝다

애초 해오라기(해오라비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새를 닮았다고 해서 해오라비난초라고 불렸을 텐데, 정작 해오라기가 백로(白鷺)과의 새이기는 하지만 머리와 등이 검고 통통한 게 흰색 꽃의 해오라비난초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온몸이 희고 날렵한 백로가 아닌 ‘해오라기’가 이름에 붙은 연유가 선뜻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호박꽃이든 그 어떤 꽃이든 세상에 나온 모든 식물마다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저만의 고유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그렇게 믿으려 애써 왔건만, 혼이 빠질 만큼 황홀한 해오라비난초의 만개한 꽃을 보는 순간,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예쁜 꽃은 없다. 최고!”라는 탄성을 절로 내뱉곤 합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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