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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동물국회 vs 식물국회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1.25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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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동물국회와 식물국회 중 어느 쪽이 덜 불편하다고 느끼십니까?’라는 설문조사가 실시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목불인견이기는 매양 한가지지만 그나마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참아줄만한 것은 어느 쪽일까?

내친 김에 한걸음 더 나아가 보기로 하자. 같은 물음을 익명성이 보장되는 설문조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특정인에게 던진다면 각각의 대답은 또 어떻게 나올까? 감히 단언컨대, 민생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거리 서명에 동참했던 박근혜 대통령조차 대답을 내놓기 전 일순 망설일게 틀림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엔 진정으로 어느 쪽을 고를지 몰라 망설일 것이고, 그 다음엔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이미지로 비쳐질까 고민하느라 주춤거릴 것이다.

가상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정부 여당으로부터 식물국회의 주범으로 난타당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거론하기 위함이다. 과연 국회선진화법은 그토록 큰 해악을 끼치는 악법이고 망국법일까?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18대 국회 막바지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독려 속에 여당이 주도적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새 국회법에 붙여진 자화자찬식 별칭이다. 법안 발의의 주된 목적은 물리적 충돌이 난무하는 ‘동물국회’ 재발 방지였다. 그 방법은 쟁점 법안의 경우 재적 과반이 아니라 5분의3 이상 동의가 있어야 신속처리법안으로 상정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었다. 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 등으로 제한했다. 사실상 의장이 독자적으로 쟁점 법안을 직권상정할 여지를 없앤 셈이다.

그 효과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전기톱 쇠망치의 난무와 공중부양 쇼 등의 볼썽 사나운 장면들이 국회 의사당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의원들의 품격이 갑자기 높아져서가 아니었다. 다수당의 법안 단독 처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데 따른 억지춘향식 질서 회복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로 인해 여의도 정치가 문제를 일으키는 단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해무익의 단계로 진일보했다는 비아냥 섞인 비평도 등장했다.

문제는 동물국회가 사라지니 식물국회가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다툼의 여지가 있는 법안 처리는 무조건 올스톱됐다. 귀책사유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눈앞의 총선 승리만을 위해 일을 밀어붙인 여당의 오판 또는 탐욕이었다.

정부 여당은 식물국회 등장으로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여당 대표의 사과가 있었다지만, 그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이었고 푸념의 목소리는 사뭇 흐드러졌다. 그래도 야당이 꿈쩍도 하지 않자, 청와대와 여당은 애먼 국회의장을 향해 초법적 조치를 취하라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의장을 향한 압박마저 통하지 않게 되자 여당이 새로이 들고 나온 것이 편법을 통한 국회선진화법 개정 시도였다. 여당은 국회법 조항을 교묘히 이용하기 위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소집한 뒤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하자마자 부결시켜버렸다. 상임위에서 부결된 법안을 의원 30인 이상이 요구하면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규정한 국회법 조항을 염두에 둔 꼼수였다. 해당 개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가 요구하는 경우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표결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내용을 추가로 담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부의된 법안의 상정 권한을 지닌 국회의장이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상정을 거부했으니..... 결국 여당으로서는 아무 소득 없이 또 한번 정치를 희화화했다는 비난만 덤으로 떠안게 됐다. 정의화 의장은 자신도 국회선진화법에 찬성하진 않지만 엄연히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만큼 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여당 측에서 제기하는 선진화법의 위헌 시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문제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의회주의자다운 대응이라 할 수 있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엔 위헌 시비를 부를 여지가 분명히 있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바꾸는 등의 문제를 다룰 때가 아닌 한, 국회는 민주주의 기본 룰인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헌법 49조 ‘다수결의 원칙’).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법은 폐지 또는 개정되어 마땅하다. 단, 그 방법과 절차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정의화 의장도 그 점을 강조하며 따로이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 안을 토대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개정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식물국회 탈피도 중요하지만 동물국회로의 회귀 역시 절대 안된다는 점이다. 동물국회로 회귀하느니 차라리 식물국회 상태의 지금이 더 낫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식물국회가 차악이라면 동물국회는 최악이다.

그 논거는 식물국회가 갖는 최소한의 순기능이다. 정부 여당이야 답답할 수 있겠지만 식물국회는 쟁점법안의 섣부른 통과를 저지함으로써 행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현행 정치구도로 말하자면, 민생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기업친화적 법안이 마구 통과되는 것을 막는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반면 동물국회는 정치 논리 자체를 비웃는 시정잡배들의 편싸움 마당에 다름 아니다. 정당의 원내대표가 쟁점법안 의결시 젊은 의원들을 동원해 ‘누구누구는 의장석 점거조, 누구누구는 본회의장 출입문 봉쇄조’ 등등의 작전 지시를 내리고, 밤이면 의사당에 담요가 너저분하게 깔려 있는 모습을 다시 보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야당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지금의 점잖은 식물국회가 훨씬 더 긍정적이고 일견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매년 회계연도가 바뀔 때마다 며칠 짜리 임시예산안 편성에 찔끔찔끔 동의해주며 연방정부를 폐쇄(셧다운) 위기 직전 상황으로 몰아넣곤 하는 미국 공화당에 비하면 우리 야당은 그나마 양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리 서명에 나설 정도라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인시위를 해도 벌써 여러번 해야 옳았을 것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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