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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곶자왈의 향(香), 백서향!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2.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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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은 Daphne kiusiana Miq. 팥꽃나무과의 상록 활엽 관목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말이 있듯 눈 폭탄과 강추위가 제아무리 기승을 부린들 오는 봄 막을 수 있을까요. 아직 눈 덮인 한라산이 두 눈에 가득 찬 2월 초이지만 겨울나무 사이로 오고 있는 봄의 향기는 이미 곶자왈에 가득 번져 있습니다. 각각 숲과 자갈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곶’과 ‘자왈’이 합쳐진 곶자왈은 용암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요철(凹凸) 지형으로, 녹나무 등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 콩짜개덩굴 등 양치류 등이 공존하는 원시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 이미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는 백서향(白瑞香)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제주의 봄은 곶자왈에 번지는 그윽한 백서향의 향기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순백의 신부가 두 손 모아 잡고 있는 부케를 똑 닮은 백서향. 제주 곶자왈에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특산식물이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이란 노랫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백서향 꽃은 키 1m 안팎의 늘 푸른 활엽 관목 가지 끝에 마치 신부의 부케처럼 다닥다닥 달리는데, 그 향기는 온 숲을 뒤덮을 만큼 강렬합니다. ‘꿈속의 사랑’이란 꽃말처럼 맑은 듯하면서도 강하고, 은은한 듯싶으면서도 깊고 그윽하고, 달콤한 듯하면서도 시원한 백서향 향기를 잊지 못해 매년 제주 숲을 찾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늘 푸른 활엽 관목인 백서향이 한겨울 꽃송이를 가득 달고 곶자왈 숲에 서있다.

당초 자주색 꽃이 피고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는 중국 원산의 서향(瑞香)과 달리 흰색 꽃이 핀다고 해서 백서향이라고 불렸는데, 둘 다 그 향이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향’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1월 중순 한두 송이씩 피기 시작하는 백서향. 단 한 송이만 피어나도 그윽한 향이 온 숲에 가득 번진다.

 

백서향은 우리나라 거제도 등 남해안과 제주도에 자생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규슈 지방에서 처음 탐사됐음을 뜻하는 종소명(種小名) ‘kiusiana’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주에서 자라는 백서향은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M. Kim)이라는 별도의 종으로 봐야 한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제주백서향은 꽃받침통과 열편(꽃잎이 펼쳐진 부분)에 털이 없고 긴 타원형 잎을 가지며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에서 자생하는 반면, 백서향은 꽃받침 통과 열편에 털이 있고 도피침형 잎을 가지며 남해안에서 자라는 점에서 두 종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요. 2013년 우리나라 식물분류학회지에 실린 이 논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제주백서향은 우리나라의 고유식물, 제주도 곶자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특산식물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 끝에 방사상으로 가득 달린 백서향 꽃송이. 막 피기 시작한 꽃송이를 달고 선 모습이 도도하고 고고하다.

 

동쪽으로는 동백동산으로 유명한 선흥곶자왈과 김녕곶자왈 일대, 서쪽에서는 저지곶자왈과 안덕곶자왈 일대가 대표적인 자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백서향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던 곶자왈에서 최근 무단 도채로 인해 개체수가 줄고 자생지가 크게 좁아지고 있어 강력한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가지 끝에 수십 송이씩 달리는 제주백서향은 처음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해 만개하기까지 한 달 넘게 걸립니다. 백서향이 자생하는 곶자왈은 2월 내내, 아마 늦은 3월까지 긴 기간 찾는 이의 오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힐링의 숲이 될 것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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