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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샌더스의 새정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2.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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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간 격차(또는 불평등)를 바라보는 사회학의 두 가지 기본적인 관점은 기능론과 갈등론이다. 갈등론이 격차의 부작용에 주목하는 반면, 기능론은 그 속에 내포된 순기능을 강조한다. 해서, 기능론은 계층간 격차를 당연시한다. 격차 및 불평등이 하위 계층 구성원들의 사회이동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사회가 발전해나가는 동력을 이룬다는게 기능론의 논리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가 혼재된 상태에서 유기체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만이 역동성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역시 기능론자들의 주된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국은 철저히 기능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기능론은 보수 친화적 이론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이념을 토대로 기득권 세력들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보수적 분위기를 띨 수밖에 없다.

뜯어보면 미국의 보수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 예를 열거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일례로 미국 보수성을 상징하는 WASP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단어다. 'White Anglo Saxon Protestant'의 이니셜인 WASP(와스프)는 소위 미국의 ‘일등국민’이다. 현대판 미국판 양반인 셈이다. 앵글로 색슨계 백인이면서 개신교도라는 조건을 충족한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정계와 재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을 주무르며 주류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와스프들은 그들끼리 사교하고, 그들끼리 결혼하고, 그들끼리 모여 산다.

그들의 배타성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는 종종 성공한 한인이 백인들끼리 모여 사는 부촌으로 이사 갔다가 이웃과의 갈등 끝에 되돌아 나오는 사례를 외신을 통해 듣곤 한다. 그 이면에는 십중팔구 와스프들의 은근한 집단 따돌림이 숨어 있다. 수년 전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출장차 들렀다가 만난 한 한인 사업가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 와스프들의 배타성을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그가 이주해간 곳은 패서디나의 백인 부촌이었다. 그의 집은 앞마당에 잔디 정원이 조성돼 있고 뒷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고급 저택이었다. 그는 이사를 한 뒤 이웃 주민들과의 사교를 위해 일주일에 몇차례씩 자신의 집 풀장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그 때 뿐 빤히 아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이웃들은 그 다음에 마주치면 대개가 모르는 체 지나치더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남편의 성(姓)을 따라가는 전통 역시 미국 사회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같은 풍습에 대해 엘리트 여성들조차 크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 곳이 또한 미국이다. 그로 인해 저명한 여성이 하루 아침에 바뀐 이름으로 매스컴에 등장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혼란을 안겨주기도 한다. 결혼을 하면서 자기 성을 버리거나, 혹은 이혼과 함께 본래의 자기 성으로 돌아가는데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에서의 변호사는 여전히 백인 남성의 직업으로 인식돼 있다. 앵글로 색슨계는 아니지만 백인인 빌 게이츠 역시 한 때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하버드 법대에 입학해 변호사의 길을 추구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변호사였다.

이상의 예에서 엿볼 수 있듯이 미국 사회의 완고한 보수주의는 백인 및 남성 우월주의와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그같은 보수성은 여성과 사회주의자에 대한 거부감으로 귀결됐다. 그 결과 유럽, 오세아니아, 동남아, 동아시아에서 여성 총리 및 대통령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문명을 선도한다는 미국은 여성 대통령 출현을 허용치 않고 있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자가 언감생심 대통령의 꿈을 키울 수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미국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도 그냥 바람이 아니라 광풍 수준이다. 그 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의 바람이 동시에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또는 사회주의자 대통령의 탄생을 예고하는 바람들이 그 것이다. 그로 인해 본격적인 정당별 후보 경선 단계에 돌입한 이번 미국 대선전을 여성과 사회주의자 둘 중 누구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가를 가늠하는 싸움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그 둘은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두 개의 광풍 중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래도 샌더스 상원의원이 일으키고 있는 바람이다. 그가 일으키는 광풍은 가히 미국판 새정치 바람이라 할 만하다. 샌더스의 새정치에 대한 미국민들의 열광은 미국을 풍미해온 보수주의를 뿌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샌더스가 제시하는, 개념으로서의 새정치의 요체는 그가 자주 말했듯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이 문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입을 통해서도 간간이 언급되고 있지만 샌더스의 입을 거쳐 나올 때에 비로소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한국의 그 것과 달리 미국판 새정치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안철수의 구호 뿐인 새정치와 달리 샌더스의 새정치는 실체가 뚜렷하다. 샌더스의 새정치는 구호가 아닌 개념으로서의 새정치다. 샌더스는 ‘새정치’란 워딩을 구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인 누구도 말하지 않고 걸으려 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미국민들의 영감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샌더스가 추구하는 새정치의 목표는 격차 축소다. 그가 내세우는 격차 축소의 방법은 사회주의 철학의 실천이다. 부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자는게 그가 앞세우는 단순 명쾌한 주장이다. 샌더스는 기회가 날 때마다 “최근 30년간 늘어난 부의 절반을 상위 1%의 부자가 가져갔다.”라고 주장하며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샌더스는 격차 축소의 구체적 방법으로 월가의 거대 은행 해체, 최저 임금 인상, 보편적인 의료보험제 도입, 공립대 무상교육 실시, 조세 개혁 등을 내세우고 있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어느 정치인도 감히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진보적인 주장들을 격차 해소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명료성 외에 샌더스의 새정치가 위력을 발휘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솔직함이다. 격차 축소를 위해서는 1%의 부자 뿐 아니라 중산층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게 샌더스의 일관된 주장이다.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그의 인식은 오히려 샌더스의 공약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의 공약이 신기루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목표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샌더스의 새정치는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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