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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웠다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2.15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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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명절은 참으로 뒤숭숭했다. 주말을 포함해 연휴가 5일이나 돼 온 국민은 다소 들뜬 마음으로 설을 맞이 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긴박한 뉴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북한이 설날 하루전인 7일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앞서 있었던 원자탄 실험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도발을 또 반복했다. 청와대와 정치권, 외교 관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움직여야 했고 관련 뉴스가 설 분위기를 압도했다. 당연히 일반 국민들은 개운치 않은 마음을 안고 고향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 명절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DNA에 켜켜이 녹아 있음을 실감케 했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연휴기간 하루 평균 16만명 정도가 해외여행에 나서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추세도 강했지만 고향과 가족, 친지를 찾아 뵙기 위해 불편한 이동을 참아냈던 국민이 3700여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아들과 손자, 손녀들은 고향의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고, 조상들께 차례를 올리는 예(禮)를 잊지 않았다. 평소 찾아 뵙지 못했던 친인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 세배도 올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도리(道理)를 되새겼다.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만큼 새해에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의지를 세우는 등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기에 설 명절은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세시풍습이었다. 특히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작은 나눔으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비추며 전국 방방곡곡을 훈훈하게 만들었던 평범한 이웃들이 많아 우리 사는 세상을 한층 아름답게 했다.

설 연휴에도 범인 검거에 고생하는 경찰관에게 음료 1병을 남몰래 건넨 주민이 있었는가 하면, 경찰관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갑자기 정신을 잃은 3살 어린 생명은 안전하게 치료 받고 가족의 품으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서울 양천구의 어머니 자원봉사단원들은 설 연휴 동안 혹시 있을지 모를 결식 아동들을 위해 ‘엄마 도시락’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일일이 전달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60대 아주머니가 골목길 한편에서 600여명의 노인들에게 떡국을 나누었다. 노숙자, 홀몸노인 등이 더 없이 따뜻한 설날을 맞이하는 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벌써 5년째 이어오고 있다니 천사가 따로 있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선행에는 나이와 직업을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전북 익산의 육군부사관학교는 올 설날에도 어김 없이 도시락 봉사를 이어갔다. 지역의 지적장애인과 홀로 힘겹게 살아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매일 하루 세끼 분량의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부사관들이 순번을 정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14년째 이 일을 이어오고 있다니 그들의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강원 춘천의 한 봉사회 회원 230여명은 복지시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와 봉사자들을 찾아 경제적 지원은 물론 건강하게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자립을 돕고 있다. 의지할데 없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그들에게 살아갈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비록 작지만, 그래도 듬직한 비빌언덕이 되어주겠다는 아름다운 마음들이다.

이번 설에는 성자의 삶 못지않은 이웃들도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중학교 교감으로 정년 퇴임한 선생님은 14년째 병원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9000여 시간을 봉사활동으로 채웠다. 일주일에 한번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병원에 출근해 환자들의 아픔을 달래고 말벗이 되어 주고, 대소변 수발 등을 해 준다. “당신은 건강하니 오래오래 봉사하는 삶을 살아달라는 말기 환자의 말을 잊을 수 없다.”며 봉사활동 시간을 1만 시간 이상 채우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서울의 한 목사는 14년째 우유배달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외로운 노인들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니 눈물겹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집에 매일 우유를 배달하면서 이틀 이상 문 앞의 우유가 그대로 방치되면 목사가 직접 방문, 안녕 여부를 확인한다. 만약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 사후 수습이라도 빨리 해 드리겠다는 마음에서다. 현재 1000여 가구에 공짜로 우유를 배달해주고 있지만 앞으로 5000여 가구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이들이 있어 세상은 그만큼 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 지리라 믿어진다.

시인 천상병은 가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꿈꿨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귀천(歸天)에서 노래했던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뤄지지 않을까 여겨진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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