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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그리운 봄' 재촉하는 광대나물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2.15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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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풀과의 두해살이풀로, 학명은 Lamium amplexicaule L.

요 며칠 제법 비가 내렸습니다. 아직 2월 중순이니 겨울비라 부르는 게 옳겠지만, 이리저리 날리는 빗줄기에선 겨울의 한기보다는 봄날의 따스함이 느껴지니 봄비라 부르고 싶은 비입니다. 봄을 부르는 비, 봄을 재촉하는 이 비가 그친 뒤 곧바로 봄이 시작되는 건 아니겠지만 기분만은 한결 봄에 다가선 듯 가볍습니다. 앞으로도 두어 차례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하고,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친 연후에야 봄이 온다는 걸 익히 알고 있건만, 마음과 눈은 벌써부터 봄꽃을 찾아 산골짝을 헤매고 있습니다.

벌써 화창한 봄날이 시작된 듯 광대나물의 붉은 꽃이 제주 올레길을 화사하게 밝히고 있다.

삐죽삐죽 돋아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산속 야생화와 달리 양지바른 들녘의 길섶과 논두렁, 밭두렁에 피는 들꽃들은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달고 선지 오래되었습니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이 겨울의 끄트머리이자 봄의 초입에 피는 대표적인 산중 야생화라고 한다면, 광대나물과 큰개불알풀은 심지어 한겨울에도 피는 대표적인 들녘의 야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 해안에서는 1월 초 마을 길섶에 큰개불알풀과 광대나물이 우르르 돋아나 꽃을 피우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널빤지 깔린 해안도로 가장자리에 돋아난 광대나물.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광대나물은 가까이 다가가 입맞춤을 하고 싶을 만큼 귀엽기 짝이 없는 붉은색 꽃의 전체적인 형태가, 얼굴과 팔다리를 온통 붉게 분장한 어릿광대가 흥겨운 가락에 맞춰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해서 이런 우리말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붉은색 꽃과 이파리가 광대가 입는 옷처럼 알록달록 곱다고 해서 그 이름이 나왔다는 주장도, 꽃 모양이 코딱지를 닮아 코딱지나물이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춤추는 광대의 몸짓을 연상케 하는 광대나물의 연분홍 꽃.

그런데 일본에서는 ‘호도케노자(佛の座)’라고 부릅니다. ‘호도케’는 부처고 ‘자’는 좌석(座)이니, 직역을 하면 ‘부처 자리’, 즉 불가에서 말하는 ‘연화대’란 뜻이 됩니다. 불쑥불쑥 돋아난 꽃을 둥글게 받치고 있는 잎의 형태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이름은 보개초(寶蓋草)인데, 이 역시 잎이 보석함의 뚜껑과 닮았다고 해서 붙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는 꽃을 보고, 중국과 일본은 잎을 보고 각기 그 이름을 지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개불알풀과 함께 지천으로 피어나는 광대나물.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는 식물’이라는 잡초의 사전적 정의에 꼭 들어맞게 전국 어디서나 잘 자라 쉽게 볼 수 있는 광대나물은 흔히 야생화보다는 잡초 대접을 받기 십상이지만, “5월 단오 이전에 염소가 먹는 풀은 사람도 다 먹을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고, 발효시키면 효소식품의 재료도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부처가 자리한 연화대를 똑 닮은 광대나물의 둥근 이파리.

예전에는 약재로도 이용했는데, 여름철 전초를 말려 달여 마시면 뼈에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꿀풀과 식물답게 꽃에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핑크빛 감도는 흰색 꽃이 단연 돋보이는 광대나물.

‘그리운 봄’이란 꽃말처럼 그 어떤 야생화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광대나물. 다 자란 전초라고 해도 10~30cm, 길쭉한 꽃 크기도 1~2cm에 불과하지만, 붉은색과 흰색, 분홍색 등 꽃 색도 다양하고 꽃 모양도 귀엽고 깜찍한 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 제목 ‘풀꽃’에 꼭 들어맞는 풀꽃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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