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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전면 중단'이든 '폐쇄'든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2.15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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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전면 중단’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한사코 쓰지 않는 표현이 하나 있다. ‘폐쇄’라는 단어가 그 것이다. 통일부는 지난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관련 정부 성명’을 발표할 당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개성공단 운영 중단과 관련한 대책을 내놓거나 ‘개성공단 관련 정부입장’을 발표할 때 한결 같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어법에도 맞지 않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란 표현이 반복해 등장하자 일부 언론은 비문(非文)을 면할 요량으로 ‘개성공단 운영 전면 중단’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중단’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가 ‘일이나 언행’을 도중에 멈춘다는 것인 만큼 시설을 의미하는 개성공단은 ‘중단’의 대상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체 중 일부는 정부의 의도를 존중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란 용어를 충실히 구사하고 있다. 어떤 매체는 북한의 개성공단 봉쇄 조치에 한해서만 ‘폐쇄’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수의 매체가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관련 조치를 처음부터 ‘폐쇄’로 표현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조치와 관련해 굳이 ‘폐쇄’라는 단어를 기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북한의 실효적 지배 하에 있는 개성공단을 우리가 ‘폐쇄’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하기로 하자. 그 점까지 따지고 들자면 자칫 소모적인 위헌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그같은 시비는 북한과의 교류를 ‘외교’로, 북한 주민을 ‘국민’으로 부르는게 옳은지 여부를 따져보자고 들이대는 것 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무익한 일이다.

짐작하건대 정부 당국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는 시설의 온전한 보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선제적으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정부도 ‘폐쇄’라는 강한 어감을 감당하는데 대해서는 부담을 느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이번 조치를 감행하면서도 바늘구멍만한 크기일망정 빠져나갈 출구를 확보하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이같은 추정들은 정부의 행태를 그나마 선의의 시각으로 보아줄 때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용어 선택과 관련한 정부의 행태는 부정적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더 크다.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주체를 우리 정부가 아닌 북한으로 만들려는 치졸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의 ‘전면중단’ 조치를 북한이 ‘폐쇄’로 맞받아쳤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간 우리에게 유무형의 이익을 가져다주던 개성공단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이게 됐고, 생사여탈권이 온전히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개성공단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익은 수치로 계산해낼 수 없을 만큼 막대했다.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에서 갈파했듯이 지난 12년 동안 국제사회에서는 “개성공단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라는 보이지 않는 명제가 성립돼 있었다. 개성공단의 가치를 논할 때 이같은 명제를 뛰어넘을 또 다른 명제가 있을 수 있을까?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돈의 얼마가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얼마가 김정은의 내탕금으로 들어가고 등등의 분석은 치졸하고 구차스럽다.

특히나 그같은 주장을 정부 당국자가 나서서 하는 것은 외국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남우세스럽다. 이 정도 국력에 이 정도 국제적 위상을 세운 대한민국 정부의 당국자가 북한을 상대하면서 셈 찬 아재비 노릇은 못할망정, 그들의 부엌 세간살림까지 이러쿵 저러쿵 들먹이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받아들여진다.

개성공단 수입이 핵무기 개발비로 전용됐다는 주장 자체도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어차피 주머닛돈이 쌈짓돈인데, 북한이 매년 올리는 경상수입을 두고 각각의 근원을 따져가며 용처를 분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정보는 과연 정확할 수 있을까?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지적했듯이 개성공단은 그 자체로서 이미 작은 통일공간이었다. 그 곳에서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실상을 깨달았고, 새로운 자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5만여 북한 근로자의 자각은 그들의 가족 20만여명, 그 20만여명과 연계된 또 다른 수십만명의 주민 등등으로 전이되면서 통일의 희망을 키워가는 토양을 조성해가고 있었다.

우리 정부 역시 개성공단이 갖는 그 같은 가치를 인식한 결과 공단 내 화장실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몰래 화장지와 비누 등 생필품을 가져가는 것을 일부러 모른 체해왔다. 생필품의 전파가 남한의 우월성을 북한 전역에 알리게 되고, 그로써 우리가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개성공단이 그간 얼마나 유용한 대북 심리전을 수행해주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오죽했으면 북한 당국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제공되던 간식용 초코파이의 지급 중단을 우리 측에 요구했겠는가?

‘전면 중단’이든 ‘폐쇄’든 개성공단은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개성공단은 이제 김정은의 명령 한마디에 하루 아침에 군사 지역으로 변할 위기에 빠져 있다. 그리고 개성공단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든 북한의 핵정책은 한반도에 조성되고 있는 신냉전을 빌미로 더욱 강력히 추진될게 분명해졌다.        
 
이 쯤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가져다줄 효과에 대해 정부 당국은 차분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해적이고 자학적인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북한이 잃을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잃을 것은 무엇인지, 혹은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되돌아 보자는 뜻이다.

그런 다음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이 듣고 싶은 것은 핵개발 자금 운운하는 정부 당국의 구구한 해명이 아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것은 공단 폐쇄 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명료한 설명이다. 그리고 그 답을 내놓을 주체는 반드시 박근혜 대통령이어야만 한다. 개성공단 폐쇄가 다수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초법적으로 이뤄진,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자 통치행위의 일환이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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