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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가당찮은 핵 안보 포퓰리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2.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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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창비)에는 경주 박물관의 아기 부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내용인 즉 이렇다. 아기 부처가 수년 간의 해외 여행을 마치고 다시 경주 박물관 불상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멀쩡하던 아기 부처의 발가락이 금세 까맣게 변했다. ‘소불선생’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몇 시간만 그 앞에 서 있으면 알게 될 걸세.”였단다. 그래서 그대로 행했더니 한 시간도 채 못 돼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아기 부처의 발가락이 까맣게 변한 것은 견학하러 온 아이들의 손때가 쌓인 결과였다. 아이들은 문화재 해설가의 고리타분한 설명엔 무관심했다. 그러나 아기 부처를 보고는 너도 나도 “귀엽다.”고 감탄하며 수위 아저씨와 인솔 교사 몰래 금줄을 넘어가 아기 부처를 만져보고 나오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워낙 순식간에 해치워야 하는 일이다 보니 아이들이 만져볼 수 있는 부분은 기껏해야 아기 부처의 발가락에 국한돼 있었다.     

유홍준이 아기 부처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문화재 감상법은 ‘본 대로 느낀 대로’다. 그는 해당 글에서 고급 문화에 대한 이해 방법 역시 대중 문화의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문화재를 감상할 때 이성 못지 않게 감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감성의 가치가 새삼 강조되는 시대다. 산업화 시대가 도래한 이후부터 각 분야에서 사유와 이성보다는 감성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성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기업 마케팅이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기술과 이성 중심에서 감성 중심으로 변한지 오래다. 광고학에서 일찍부터 3B(어린이, 동물, 미인)가 강조되고, 제품 내용 못지 않게 디자인이 중요시되는 것 역시 감성 마케팅의 산물이다.

문화와 마케팅 분야에서의 감성 중시 경향은 나름 순기능을 갖는다. 제각각 엘리트 집단의 배타적 경계를 허물거나, 소비의 미덕을 실천하게 한다는 점이 그 같은 해석의 배경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 영역에서의 감성 마케팅이다. 정치에서의 감성 마케팅은 한 사회, 한 국가의 운명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출몰하는 이념 장사꾼들이 - 진보든 보수든 구분 없이 - 지탄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에서의 감성 마케팅은 흔히 ‘포퓰리즘’이란 이름으로 통용된다.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입 밖에 냄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미 좀 봤다.”고 자평한 행정수도 이전,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도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유력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은 그 후유증이 전 사회에 미치고, 뒷감당은 애먼 사회 구성원들이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고 비신사적이다. 정치인이 내세우는 정책이 포퓰리즘인지 아닌지는 정책 발설 또는 시행의 과실이 누구에게 쏠릴지, 효과의 지속 시간이 한순간일지 영속적일지를 따져보면 쉽게 구별해낼 수 있다. 포퓰리즘 정책이 실제로 실행 단계에 진입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포퓰리즘 정책을 발설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요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의 핵 무장론 역시 안보 포퓰리즘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다분하다. 핵 무장론이 포퓰리즘 정책임을 의심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현실성이다. 우리의 핵무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여러 전문가와 매체들이 수 없이 제기한 만큼 일일이 재론할 필요조차 못느낄 정도다.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시도하는 즉시 유엔과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 189개국으로부터 집단 제재를 받고, 그로 인해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해온 대한민국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며, 일본과 타이완 등이 연쇄적으로 핵무장을 시도하리라는 게 한다 하는 분석가들이 앞다퉈 내놓는 암울한 예상들이다. 우리가 핵무장을 시도하면 오히려 일본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리라는 전망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남한의 핵무장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무장을 승인하는 행위가 된다는 점 역시 상식적인 분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장삼이사들도 술자리에서 내놓을 수 있는 이 정도의 예상을 원유철 원내대표만 못하는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여당 원내 사령탑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 그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의 핵 무장론은 국민 감정에 편승한 딱 떨어지는 포퓰리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포퓰리즘 논쟁은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있을 때 더욱 격렬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실현 불가능한 정책보다는 다툼의 여지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이 목전에 다가와 있고 60% 이상의 국민이 핵 무장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점 또한 핵 무장론을 불순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핵무장론이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고 믿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역시나 비현실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밝힌 핵 무장론의 반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회를 찾아가 연설하면서 핵 무장론에 대해 확실한 선을 긋지 않은 것도 그같은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은 정치 소비자들의 이성보다 감성에 소구(訴求)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변해가는 속성을 지닌다. 이전과 달리 정치인과 유권자 간의 다양한 소통 수단이 개발돼 있는 점도 정치인들이 저마다 눈길을 끌기 위해 메시지의 자극 강도를 점점 더 높여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회학자 강준만이 설파했듯이, 누워서 채널을 마음대로 돌릴 수 있는 리모콘의 발명과 함께 TV 프로그램들의 선정성이 급격히 강화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하나 정치인의 감성 마케팅이 안고 있는 문제는 과장된 상품 광고와 달리 별달리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국정 운영이 그 좋은 사례다. 안타깝지만 핵은 우리에게 독이 든 성배다. 그래서 찾아 헤매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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