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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접경 지역에 핀 복수초!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2.29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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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접경 지역에도 봄이 왔어요! 꽃이 피었어요!” 봄이 특정 지역을 가려 오고 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이지만, 세월이 하 수상하니 접경 지역에 사는 꽃 동무의 전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제2, 제3의 냉전 시대를 맞은 듯 꽁꽁 얼어붙은 접경 지역에도 어김없이 화사한 봄날은 오고 봄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무심하게 받아넘길 수 없는 이즈음입니다.

 
 
흑갈색 낙엽 더미 위에 불쑥 솟아나 형형한 노란색 빛을 발하며 당당하게 서 있는 복수초.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 2월 23일 경기도 지장산에서 만개한 모습을 담았다.

 저 멀리 남녘에 가지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이미 한 달여가 훌쩍 지나갔지만, 경기·강원 북부 지역은 여전히 땅과 계곡 물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황금색 복수초가 피기 시작했다. 늦기 전에 다녀가라.”는 채근에 마음이 들뜹니다. 해서 지난 23일 오랜만에 카메라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막 벌어지기 시작한 복수초 꽃봉오리. 손톱만 한 노란색 봉오리 안에 마치 작은 우주가 담긴 듯하다.

해마다 2월 중·하순에 이른 봄꽃을 찾아 나설 때마다 겪는 일로, 이번에도 자유로를 타고 파주를 지나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서 “차창 밖 풍경은 아직 한겨울인데 공연한 걸음 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 걱정 반 후회 반의 심경에 빠져듭니다. 그래도 이왕 나선 길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한탄강 유원지, 전곡, 연천을 지나 접경 지역으로 깊이깊이 들어갑니다. 갈수록 지나는 차량은 줄고, 부대와 훈련장 등 군 시설이 잇달아 눈에 들어오는 게 접경 지역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황금색 술잔을 닮은 복수초.

드디어 도착한 지장산. 경기도 포천시와 연천군, 강원도 철원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높이 877m의 산으로 이웃한 고대산과 금학산과 더불어 민간인 등산이 허용된 최북단 산의 하나입니다. 원심원사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지난해와 지지난해 개체 수가 풍성했던 오른편 계곡으로 올라갑니다. 처음엔 흑갈색의 낙엽만이 무성한 듯싶더니, 발밑을 찬찬히 살피자 여기저기 제법 많은 꽃봉오리가 눈에 띕니다. 그러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꽃 동무의 말은 꽃봉오리들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가 중천에 온다 한들 꽃잎이 활짝 벌어질 성싶지 않습니다. 일찍 올라온 몇몇 꽃봉오리들은 최근 며칠 동안 기온이 뚝 떨어진 탓인지 벌어지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무성한 낙엽 사이에 꽃잎을 활짝 열고 노란색 수술을 반짝이는 복수초.

더 늦기 전 볕이 더 잘 드는 제1 등산로 쪽 계곡으로 방향을 틉니다. 빠른 포기와 대안 모색이 야생화 탐사 때 취해야 할 중요한 덕목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앞서 찾은 계곡보다는 해가 드는 시간이 긴 평지여서 그런지 다행히도 꽃잎이 벌어진 복수초들이 여럿 눈에 들어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사이 피는 꽃. 복수초. 활짝 핀 꽃 모양은 축배의 잔을 닮았고, 꽃 색은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버린다”는 문정희 시인의 말처럼 온 힘을 다해 형광 물질을 쏟아내는 듯 형형한 노란색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흑갈색 낙엽이 무성한 산자락에서 한두 송이 겨우 핀 복수초를 누구나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눈에 덮여 숨소리 들리지 않는다고 돌아서지 마세요/…가장 일찍 피어나 기나긴 숨결로 봄을 여는 나를/문 앞에서 잊지 마세요.”(이오장의 복수초)라는 시인의 애원처럼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 끈기 있게 찾는 자에게만 선물처럼 다가섭니다. 학명 중 종명 아무렌시스(amurensis)는 흔히 헤이룽 강이라 부르는 러시아 아무르 강변에서 처음 채집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당연히 시베리아와 중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최남단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폭넓게 자생합니다. 다만 제주도에 자생하며 잎이 가늘게 갈라지는 것은 세복수초, 남부 및 도서 지역에 피며 꽃과 잎이 함께 나오는 것은 가지복수초, 그리고 전국 산지에 피는 것은 복수초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갈색의 낙엽, 그리고 노란색 복수초가 겨울과 봄 사이에 선 현재를 대변하는 듯하다.

변산바람꽃과 노루귀에 홍매, 백매, 청매까지 핀다는 남녘의 요란스런 꽃소식에 질세라 접경 지역에도 봄의 전령인 복수초가 피어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야생화 기행’이었건만, 왠지 ‘봄 같지 않은 접경 지역의 봄’에 여전히 세찬 겨울의 한기를 느끼며 2016년 2월의 끝자락을 보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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