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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우물안 개구리 된 서울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3.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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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축구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것을 “기적이다, 신화를 일궜다”라고 했었다. 온 국민들은 지금도 그때의 감동과 환희를 기억하고 있다. 또 그 날의 기적과 신화는 선수들의 땀과 함께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이 이었기에 가능했었다고 믿고 있다. 국민들이 그를 명장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하는 것에서부터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찰하고, 배려하는 그의 용인술 때문이다. 선수들을 발탁하면서 학맥이나 과거 경력에 얽매이지 않았고 실력과 잠재력에 비중을 두었기에 4강의 신화가 현실이 됐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후 축구 뿐 아니라 체육계 전반에는 지연과 학맥 등에 의한 선수 선발 관행이 크게 줄어 들었고, 빙상 등 각 종목마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부분이 여전히 우물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의 연구풍토가 여전히 전근대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9일 세계 석학들이 서울대 자연대의 연구 경쟁력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통해 학연과 눈앞의 성과에 급급한 현실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보고서는 서울대가 지난해 2월 노벨상, 필즈상 수상자 등 자연과학 분야의 해외석학 12명에게 자연과학대학의 연구역량 등을 평가 의뢰함으로써 작성된 것이다. 팀 헌트 전 영국 암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포함해 에핌 젤마노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리타 콜웰 전 미국과학재단 총재, 톰 루벤스키 미국 펜실베니아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석학들은 마치 히딩크 감독이 우리 축구계의 문제점을 진단하듯, 경직된 교수 채용시스템, 단기성과와 실적에 치중하는 연구 풍토 등 서울대의 문제점을 족집게처럼 집어 냈다. 물론 이미 수도 없이 언론에 지적됐던 전근대적인 연구 풍토 및 운영 시스템의 문제라 문제 자체보다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견고함에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석학들은 먼저 서울대 교수들이 자기 논문이 많이 인용되게 하려고 이미 여러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뛰어드는 따라하기 과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수업주제가 10여년간 바뀐게 없는 교수도 적지 않다고 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년을 보장받기 위해 유명 연구지의 기고에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팀 헌트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젊은 연구진이 정년 보장을 받기 위해 유명 연구지 기고 압박을 받기 때문에 인기 있는 연구에만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관행 때문에 “젊은 연구진이 ‘선구자’가 아니라 ‘추종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라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창의성보다는 뒤 따라가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이정도라면 다른 대학의 사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대학들이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노벨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도출해내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원로교수가 정년퇴직하면서 자기 전공분야를 연구한 복사판(Copy) 후배를 그 자리에 앉히는 관행도 학문의 진화를 가로 막고 있다고 지적됐다. 축구계 등 체육계가 10여년 전에 지적 받았던 문제점들이 대학에는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세계 석학들의 눈에도 이상하게 비친 것이다. 평가단은 이밖에도 교수들이 정년 보장을 받고 나서 안정적인 지위에 안주해 창의적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점, 대학원생 수에 비해 교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점, 박사후과정(post doctor) 연구자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석학들은 “교수진의 연구 풍토를 빨리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앞으로 5∼10년 안에 전략적으로 최고 분야 3∼4개를 육성해야 한다”며 “신임 연구진과 대학원생들이 연구를 시작할 때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성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은 “그동안 국내 최고 대학의 자리에 안주해온 게 사실”이라며 “석학들이 지적한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명장 히딩크가 축구계의 관행을 깨트렸던 것처럼 서울대도 일대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세계 일류 대학이 되기 위한 환골탈태를 기대해 본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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