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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생명의 신비'를 일깨워주는 너도바람꽃!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3.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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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Eranthis stellata.

“꽃? 아직 싹도 안 나왔어요. 어제 내린 비로 겨우내 쌓였던 눈이 겨우 녹았는데 꽃이라니…” 남녘의 화신(花信)이 하도 요란하기에 3월 7일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에 올랐습니다. 오르는 길에 산간마을의 지인을 만나 꽃 사정을 물어보니 턱도 없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칩니다. 그렇습니다. 3월도 2주일이나 지났지만, 도회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만 가더라도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에선 여전히 매서운 한기가 느껴집니다. 산기슭이든 계곡이든 파란 이파리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진달래나 생강나무 등 일찍 꽃 피는 나무들에서도 꽃망울 하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깡마른 낙엽만 가득 쌓였을뿐더러 발이 자꾸 미끄러지는 게 겨우내 꽁꽁 얼었던 바닥이 채 녹지 않았음을 일러줍니다.

 
지난 3월 7일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만난 너도바람꽃. 낙엽 쌓인 계곡의 얼음이 채 녹지 않아 사진의 바탕색이 오직 흰색과 갈색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곡으로 한 발 한 발 더 들어섭니다. 내심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수년간의 사진 정보를 살펴본즉 첫 촬영일이 3월 3일을 넘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늦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들 오는 봄을 막아낼 재간은 없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그 셈법은 틀리지 않아 결코 싹조차 없을 것 같던 낙엽 더미 속에, 바위와 바위 사이 곳곳에 콩나물 줄기 같은 여린 꽃대 위에 하얀 꽃송이가 하나씩 올라앉아 있습니다.

 
 
눈과 얼음 속에 떨고 서 있는 너도바람꽃. 생명의 외경, 자연의 신비를 느끼기에 충분한 광경이다.

“어머나, 세상에! 겨울과 다름없는 날씨에 이토록 작고 가냘픈 꽃이 피었다니…”

꽃대 하나에 꽃이 두 개 달린 ‘쌍둥이’ 너도바람꽃.

그렇습니다. 선선히 물러나기 싫어 앙탈 부리듯 한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경기·강원도 높은 산에도, 깊은 계곡에도 이미 봄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 봄바람 따라 너도바람꽃이 하나둘 피더니 순식간에 사방에 수십, 수백 송이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꽃받침 잎과, 수술처럼 보이는 주황색 꽃잎, 그리고 수술과 암술을 갖춘 너도바람꽃.

봄은 발끝에서 온다더니, 눈에 보이는 계곡은 아직 얼음투성이지만 발밑에선 손톱만 한 너도바람꽃이 꽃샘추위를 물리치고 봄을 노래합니다. ‘사랑의 비밀’이란 꽃말을 가진 너도바람꽃이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와 순백의 꽃을 피우는 걸 보면서 많은 이들이 자연의 신비, 생명에 대한 외경을 체험한 듯 야생화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강한 봄 햇살에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너도바람꽃.

복수초·변산바람꽃과 함께 가장 먼저 피는 봄꽃인 너도바람꽃은 에란티스(Eranthis)라는 라틴어 속명이 본래 봄(er)과 꽃(anthos)의 합성어라고 하니, 그 어디에서건 봄의 전령사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하는데, 주로 습기가 많은 산 계곡에서 자생합니다. 콩나물 줄기처럼 생긴 꽃대가 올라와 끄트머리에 흰색 꽃을 피우는데, 다 자라야 10~20cm에 불과합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꽃받침 잎이 5~9장 펼쳐지고, 그 안에 수술처럼 보이는 주황색 꽃이 원을 그리듯 빙 둘러 납니다. 옅은 분홍색과 흰색의 수술·암술이 여럿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대개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이 달리는데, 경기도 포천 지장산 계곡에서 꽃대 하나에 꽃이 두 개 달린 ‘쌍둥이’ 너도바람꽃을 여럿 보았습니다. 또 복수초 등의 설중화(雪中花)는 꽃이 핀 뒤 살짝 내린 눈으로 만들어지는 데 반해, 너도바람꽃은 두텁게 쌓인 눈을 헤집고 올라온, 진정한 의미의 ‘눈 속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특히 4월에도 눈이 내리는 높은 산에선 눈 속에 묻혔던 너도바람꽃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경이로운 광경도 만날 수 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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