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해제된 비밀문서 같은 서해 '꽃섬', 풍도의 야생화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3.21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생화 애호가들 사이에 꽤 오랫동안 제 이름이 아닌, 보통 명사 서해 ‘꽃섬’으로 불려온 야생화의 천국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찾는 발걸음을 줄여 자생지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나름대로의 선의가 담긴 고육책이었다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란 옛말도 있듯 누구든 한 번 보면 대번에 반할 수밖에 없는 천상의 꽃밭에 대해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까지 등장함으로써 국내 최고의 야생화 자생지 중 하나로 전 국민에게 각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해 ‘꽃섬’ 풍도를 대표하는 풍도바람꽃.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꽃받침 잎과 깔때기 모양의 진한 녹색의 꽃잎, 수술과 암술을 갖추었다.

바로 안산시 단원구에 속한 풍도(豊島)입니다.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풍도는 섬 둘레 5.4㎞, 전체 면적 1.84k㎡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현재 82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섬을 드나드는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하루 1회 여객선이 왕복 운항할 뿐입니다. 오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 대부도 방아머리항을 거쳐 낮에 풍도에 닿았다가 돌아오는 게 다이기 때문에 야생화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최소한 1박을 해야 합니다. 다만 3월이면 야생화를 찾는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오면서 단체로 낚싯배 등을 빌러 아침 일찍 섬에 들었다가 오후에 나가기도 합니다.

인터넷 야생화 동호회 ‘산에들에야생화’ 회원들이 15일 풍도 후망산 야생화 탐사에 나서고 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봄바람이 불던 지난 15일. 인터넷 야생화동호회 ‘산에들에야생화’(http://cafe.daum.net/lovewildflower777) 회원들과 함께 안산시 단원구 탄도 선착장에서 전세 낸 낚싯배에 올랐습니다. 먹거리를 던져달라고 달려드는 갈매기 떼에 눈길을 주며, 녹록치 않은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과연 꽃들은 제대로 피었을까 생각하는 사이 배는 풍도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풍도의 야생화 탐사는 선착장을 내려다보는 비탈면에 형성된 마을 뒤 해발 177m의 후망산을 오르면서 시작됩니다.

 

풍도의 또 다른 특산식물인 풍도대극.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산비탈에 무더기로 피어있다. 수술과 털이 수북한 씨방 등 풍도대극 꽃의 진기한 모습.

오르막 길섶에는 벌써 광대나물과 별꽃, 개지치 등 작은 풀꽃들이 깨알 같은 꽃송이를 하나둘 열고 있습니다. 마을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복수초가 건배라도 하듯 황금 잔을 여럿 모은 채 길손을 맞이합니다. 해제된 비밀문서의 페이지마다 귀중한 ‘1급 정보’들이 가득하듯 후망산 오솔길마다, 산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희귀 야생화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고목의 넉넉한 품에 안긴 복수초.

원래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 했지만, 1894년 청일전쟁의 시발이자 일본이 청나라 함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둔 ‘풍도해전(豊島海戰)’을 기념하기 위해 섬을 불법 점거한 일본이 ‘풍도(豊島)’로 고쳐 불렀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봄 섬 전체가 야생화 군락지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들이 풍성하게 피지만, 다른 곳에 없는 고유종을 2개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일품인 노루귀의 앙증맞은 모습.

 종전에 변산바람꽃으로 구별 없이 불리다 깔때기 모양의 꽃이 크고 형태가 다소 다른 점이 인정돼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분류됐고, 2011년 정식으로 명명된 ‘풍도바람꽃’이 그 하나요, 붉은대극과 유사하지만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한다고 해서 ‘풍도대극’이라 불리는 대극이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광대나물과 말냉이, 제비꽃, 꿩의바람꽃이 풍도의 봄 꽃밭을 풍성하게 꾸미고 있다.

3월 풍도에는 이 밖에도 뽀송뽀송한 솜털에다 꽃송이가 귀엽고 앙증맞은 분홍색과 보라색, 흰색 등 3색의 노루귀, 흰색의 수술이 보석처럼 빛나는 꿩의바람꽃, 제비꽃, 중의무릇이 여기저기서 삐쭉삐쭉 돋아나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행한 ‘산에들에야생화’ 회원들은 “1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는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났었다.”면서 “처음과 비교할 때 10분이 1 정도로 군락지가 줄어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쉬워합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