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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김무성의 리더십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3.2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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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센고쿠(戰國) 시대를 주름 잡았던 세 영웅들에 대한 고사 중 유명한 것으로 뻐꾸기 이야기가 있다. 뻐꾸기 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격을 각각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된다.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면 고사 속의 세 사람이 뻐꾸기를 울리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지략가인 도요토미는 갖은 술수를 동원해 뻐꾸기를 울게 하고, 성미 급하고 잔인한 오다는 울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 새를 울린다. 마지막으로 의뭉스럽고 인내심 강한 도쿠가와는 뻐꾸기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택한다.

셋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도요토미가 이룬 일본 통일의 기반 위에서 에도 막부 시대를 연 인물이 도쿠가와다. 도쿠가와의 주특기는 무서울 만큼의 인내와 눈치보기였다. 오다의 장점인 용기와 추진력도, 도요토미와 같은 기발한 지략도 없는 그는 그 의뭉스러움으로 인해 일본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같은 정서를 반영한 탓에 일본 TV의 사극에 등장하는 도쿠가와는 야비한 기회주의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반대로 조선 정벌의 원흉이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탐욕스러운 간웅(奸雄)으로 인식돼 있는 도요토미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단다. 그의 기상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해 일본 통일의 길을 터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잔인무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오다로서는 다소 억울한 노릇일 터이다.

요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마치 도쿠가와의 화신인 양 여겨지는 때가 많다. 공천관리위원장이란 감투 하나 걸치고 불쑥 등장해 새누리당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이한구 의원으로부터 온갖 수난과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눈멀고 귀먹은 듯 견뎌내고 있는 모습은 가히 인내의 화신이라 할만하다.

김무성을 향한 이한구의 공격은 처음부터 교본에도 없는, 변칙적이고도 마구잡이식 방법으로 이뤄졌다. 자신이 곧 당헌이요 당규였고, 대표고 뭐고 ‘까불면 죽는다’는 식의 으름장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기가 꺾인 김무성은 안절부절 못한 채 마구잡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이한구의 전횡은 당헌에 명시된 ‘상향식 추천방식’(97조)의 기본정신을 여지 없이 뭉개는데서부터 본격화됐다. 공관위 내부 의결도 없이 위원장 독단으로 우선추천제 도입 방침을 천명한 것이 시발이었다. 당헌(103조)과 당규(공관위 규정 6조)에 우선추천지역 선정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을 이용해 당헌의 기본정신을 마구 유린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김무성이 한 행동이라곤 우선추천제가 상향식 공천원칙에 위배된다고 경고한 게 전부였다. 

이후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죽여!” 등 막말 파문이 일면서 공천 작업에서의 친박 배후설이 구체화되고, 공관위 파행이 이어졌을 때도 김무성은 "지금 이야기하면 나는 망한다.“며 엉덩이를 뒤로 빼는 시늉을 하기에 바빴다.

이한구의 전횡은 지난 14일 대구 지역 등에 대한 ‘공천학살’ 명분쌓기 용으로 물갈이 3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절정을 이뤘다. 그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일방적으로 밝힌 세가지 물갈이 기준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 손상 ▲당 정체성 위배 ▲텃밭에 안주한 다선 의원 등이었다. 누가 봐도 두 번째 기준은 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듯했으나 이한구는 3원칙에 대한 기자 질문을 허용치 않았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말이 부연 설명의 전부였다. ‘내 말이 곧 법이니 따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던 셈이다.

이한구의 이날 선언은 ‘3.15 공천 학살’로 이어졌고 김무성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전략지역 단수 추천 7곳과 여성 추천 1곳 등 8곳의 공천에 문제가 있다며 최고위 회의 보이콧 등의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리더십에 상당한 손상을 입은데다 매번 뒷심 부족으로 승복하는 모습을 보인 터라 시중에서는 ‘30시간의 법칙’이란 조롱조의 표현까지 등장했다. 개헌 문제,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사태 등이 불거졌을 때 하루 하고 반나절을 못넘긴 채 번번이 물러섰던 전력이 그 배경이었다. 다른 일각에서는 김무성이 주호영 의원 등에 대한 컷오프 문제를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면피성’이란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무대(무성 대장) 바보 만들기’ ‘무대 망신주기’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친박이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본의든 아니든 이한구의 마구잡이식 공격은 김무성의 리더십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다. 이로 인해 친박 세력은 이번 총선 이후 새누리당의 주류로 자리하는 한편 당권과 내년 대권 경쟁 구도를 보다 유리하게 이끌어갈 발판까지 마련하게 됐다.     

물론 이한구 김무성 간 대립의 본질은 친박과 비박 간 계파 싸움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만을 선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무성이 지고지선인 듯 주장해온 상향식 공천의 이면엔 비박 우세의 현재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게 사실이다. 속성상 상향식 공천이 지명도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반면 친박 입장에서는 현재의 세력 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천권을 틀어쥔 채 내리꽂기식 전략공천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가 영입 케이스든 기존 구성원이든 관계 없이 전략공천은 늘 계파 형성의 씨앗으로 작용하는게 현실이다. 이는 친박이 물불 안가리고 단수 추천이나 여성 우선추천 등의 명목으로 사실상 전략공천을 강행하고 있는 이유다.

이치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한구의 전횡은 일방적으로 매도당해 마땅하다. 김무성의 의뭉스러움이 깃들어 있을망정 상향식 공천이 정치 개혁이란 명분에서 앞서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상향식 공천 원칙이 충실히 지켜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새누리당 탈당 러시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무성이 이번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과도한 인내와 눈치보기는 여당의 정치 개혁 실험을 지켜보아온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새누리당의 공천 개혁 실패는 이 쯤에서 김무성의 무작위에 의한 과오로 결론지어도 좋을 듯 싶다. 결론이 그렇다면 이제 김무성에게 남은 임무는 “정치생명을 걸고 상향식 공천을 지키겠다.”고 했던 그 약속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놓는 일일 것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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