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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알싸하면서 향긋한 노란색 꽃, 생강나무 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3.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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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 학명은 Lindera obtusiloba Blume var. obtusiloba.

“에이, 아무 꽃도 없구먼.”

지난 24일 강원도 화천 광덕산 등산로. 한참을 묵묵히 뒤따르던 지인이 끝내 참았던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복수초가 피었네,’ ‘변산바람꽃이 피었네,’ ‘너도바람꽃이 피었네.’ 등등의 요란한 꽃소식에 내심 쫓아만 가면 ‘꽃 대궐’을 보리라 기대했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봄꽃이 무더기로 피었다고 야단법석을 떨지만, 기실은 손가락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풀꽃들이 산기슭이나 골짜기 작은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피는 것이기에 무심코 지나는 이들에겐 한두 송이도 눈에 띄지 않기 십상입니다.

 
이른 봄 높은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목본류인 생강나무. 강원도 정선 일대를 굽이굽이 흐르는 조양강을 배경으로 생강나무의 노란색 꽃망울이 벌어지고 있다.

 조금 뒤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것 좀 봐, 여기도 노란색 산수유 꽃이 피기 시작했네.”

섬진강변에 매화 꽃잎이 날리고, 지리산 자락에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남녘의 꽃소식을 신문·방송 등을 통해 익히 듣고 보아온 탓이라 짐작됩니다. 주변을 온통 파스텔 톤의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산수유 꽃물결이 워낙 인상적이니 노란색 꽃만 보면 무작정 산수유라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생강나무와 더불어 봄철 전국의 마을 주변 들녘을 파스텔 톤의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산수유. 최근에는 도심 아파트는 물론 빌딩 화단의 조경수로도 많이 심는다.

 “그건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 꽃이야. 이른 봄 산에서 가장 먼저 피는 나무 꽃…” 그러면서 지금은 읽은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을 들먹이며 집에 가서 확인해보라 일러줍니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같은 노란색 꽃을 피우지만, 꽃 모양은 다르다. 생강나무의 꽃(위)은 꽃자루 없이 줄기에 붙어서 뭉친 형태로 피는 데 반해, 산수유 꽃(아래)은 방사상으로 빙 둘러 난 20~30개의 꽃자루에 하나씩 달린다.

동백꽃과 점순이의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를 중의적으로 묘사한 마지막 대목은 과연 소설의 백미라 일컬을 만합니다.

생강나무는 3~4월에도 눈이 내리곤 하는 산에서 꽃을 피우는 만큼 봄눈을 뒤집어쓴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춘천 출신의 소설가가 강원도 산골 17살짜리 점순이와 동갑내기 주인공의 순박한 사랑을 그리면서, 따듯한 남쪽 지방에서 주로 피는 동백꽃을 소재로 삼은 게 이상하다 생각해왔는데, 10년여 전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강원도에선 예전부터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 불러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백나무 열매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요긴하게 사용하면서 생강나무를 동백나무, 동박나무, 올동백 등으로 불러왔다고 합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는 정선아리랑의 올동백도,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란 가요 ‘소양강 처녀’의 동백꽃도 마찬가지로 생강나무 노란 꽃을 말합니다.

유용한 한약재인 빨간색 열매를 그대로 매단 채 노란색 꽃을 피운 산수유. 최근 값싼 중국산 산수유가 밀려들어오면서 수확을 포기한 산수유 열매가 많다고 한다.

산수유나 생강나무는 개나리가 미처 피기 전 전국의 산과 들을 노랗게 물들이는데, 대체로 산에 피는 건 생강나무요, 마을 주변에 피는 건 산수유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강나무는 자생하지만, 유용한 한약재인 산수유는 오래전부터 일부러 심고 가꿔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강나무의 꽃과 잎 등에선 산수유와 달리 김유정의 표현대로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향이, 톡 쏘는 생강 맛이 납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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