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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日 샤프 몰락이 주는 메시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3.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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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샤프전자의 굴욕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인 대만의 훙하이(鴻海)정밀공업이 우발 채무와 실적 악화를 이유로 6000억엔(약 6조 2000억원) 이상 제시했던 인수가를 2000억엔후려치려고 하고, 선납하기로 한 계약이행 보증금(1000억엔)마저 못 내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인수협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것이 빌미가 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샤프의 장기 신용등급을 ‘CCC+’에서 ‘CCC’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훙하이정밀공업은 자회사인 폭스콘이 애플의 아이폰을 비롯해 소니, 블랙베리 등의 제품을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생산·납품해 연간 매출액 1300억 달러(약 150조원)을 웃도는 세계 IT(정보기술) 공룡이다.

샤프전자는 지금의 중장년들도 학창 시절 애용한 ‘샤프펜’으로 유명한 104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의 기업이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하야가와 도쿠지가 1912년 창업한 샤프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샤프펜슬이라는 메카닉 펜슬(기계식 연필)을 처음 선보인 덕분이었다. 샤프는 하야가와가 여덟살 때부터 금속 장인 밑에서 일하며 배운 기술로 일으킨 기업인 만큼 ‘기술 우선주의’를 철저히 신봉했다. 1953년 일본 최초의 흑백TV, 1973년엔 세계 최초의 액정(LCD) 표시 전자계산기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세계 시장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LCD=샤프’라는 공식이 시작된 것이다. 샤프는 이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2001년 세계 LCD TV시장에서 무려 79.4%라는 유일무이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때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3%에 불과했다.

이런 샤프전자가 급격히 몰락하게 된 원인으로는 ‘기술 우선주의’와 ‘무모한 투자’ 두 가지가 꼽힌다. 샤프의 기술 우선주의를 보여주는 단어는 ‘블랙박스’로 규정할 수 있다. 샤프는 뛰어난 기술력을 과신한 나머지 세계 시장의 큰 흐름과는 동떨어진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 개척도 등한시했다. 샤프는 외부에선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는 블랙박스 안에서 LCD 생산부터 TV나 스마트폰 등 최종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직통합’ 모델을 구축한 게 결국 패착이 됐다. 이 모델 전략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승승장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미에현 가메야마 공장에서 생산된 아쿠오스(AQUOS) 모델은 지구촌 곳곳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주문이 쇄도하는 북미 시장에는 한 대당 운송료를 6만엔이나 주고 45인치 대형 TV를 비행기에 실어 보냈을 정도다.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대 말로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다. 세계 제조업의 흐름이 지구촌 각지에서 값싼 부품을 사들여 범용 상품을 생산하는 ‘수평통합’ 모델로 변화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국과 중국 업체들이 약진하며 시장을 크게 위협했다. 2006년 14만 6000만 엔이었던 LCD TV 한 대의 평균 가격이 2012년 8월 반토막도 안되는 4만 9000 엔으로 곤두박질치며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됐다.

샤프는 그러나 지난 날의 영화에 도취한 나머지 2007년 오사카 사카이에 4300억엔을 쏟아부어 60인치 대형 TV모델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불행히도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샤프의 실적은 수직 하락했다. 2012년엔 LCD 부문에서만 1400억엔에 가까운 천문학적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그해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재팬디스플레이(JDI) 참여를 거부하고 독자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으나, 끝내 대만 기업에 팔리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한때 세계 TV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소니가 TV사업을 분사하고 파나소닉이 PDP TV 사업을 접는 등 변신에 나설 때도 샤프만 위기 상황을 ‘강 건너 불’로 바라봤다.

다나카 유키히코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 교수는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는 기술 우선주의에 빠져 있던 일본은 세계에서 고립됐다. 샤프 뿐 아니라 일본의 다른 전자업체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샤프전자의 몰락이 우리 기업들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꾸물대면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새누리당 대표 회의실 백보드에 걸린 문구를 전해주고 싶다. ‘정신 차리자, 한 순간에 훅 간다.’

 

김규환 서울신문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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