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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김무성vs친박, 왜 양비론인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3.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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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책임은 무책임’(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이란 서양 속담은 그들의 합리적 사고를 대변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양비론을 견제하는 경구다. 양비론은 책임 소재 규명을 방해한다. 좋은게 좋은 거라는 정서가 이심전심으로 통하면서 누군가가 앞장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주창하면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터져나온다. 이 쯤 되면 아무리 큰 과실이라 할지라도 책임 소재의 규명은 물론 징벌 또는 구상(求償)까지도 물건너가고 만다.

이같은 모습은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 정서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흔히 발견된다. 더구나 우리의 정신세계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집단의 ‘와’(和)를 유난히 중요시하는 일본인들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과거의 학교문화가 그랬고, 군대문화가 그랬다. ‘와’를 중시하는 집단은 ‘말 나오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한다. 집단 내에서 다툼이 발생하면 전후관계를 따져보기도 전에 양측 모두의 잘못으로 치부하면서 서둘러 사태를 봉합해 버린다.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물타기를 통해 덮어버리는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대하는 우리의 정서도 그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보수 논객들을 중심으로 - 진보 논객들도 다른 의도로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긴 하지만 - 양쪽 당사자인 친박과 김무성 대표를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결말에 대해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리는 진단은 ‘친박과 김무성의 야합’이다. 양측이 자로 잰 듯 똑같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신물이 나도록 들어온 예의 양비론이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같은 접근법과 시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개인적인 견해로 두 개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모두 ‘노’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과관계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단순명쾌한 사건이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친박의 지지를 등에 업고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애먼 비박들의 목을 마구 날려대며 인사권을 전횡한 사건이 새누리당 공천 파문의 본질이다. 정두언 의원 표현을 빌자면 이한구는 ‘완장 찬 망나니’였다. 더 중요한 문제는 망나니 칼춤에 목이 날아간 사람들이 자신이 왜 희생됐는지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이한구의 칼춤에 김무성 대표가 취임한 이후 1년 반 이상 공들여 다듬어온 당헌 당규 상의 공천룰들은 한순간에 사문화되고 말았다. 당헌에 상향식 공천 원칙이 명시돼 있었지만 이한구는 우선추천이란 미명 하에 친박들을 곳곳에 내리꽂았고, 어떤 곳엔 단수추천이란 방식을 동원해 특정인에 대한 전략공천을 강행했다. 심지어 최고위가 되돌린 지역의 공천 대상자 결정건을 재의결하면서 의결 정족수(3분의 2)조차 무시한 채 안건을 통과시킨 경우도 있었다.

막판에 김무성이 직인 날인을 거부한 5곳은 한결 같이 경쟁력이 좋은 예비후보들에게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진박’ 후보들을 단수추천 형식으로 전략공천한 지역들이다. 김무성이 그 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8곳(여성 우선추천 1, 단수추천 7)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있다고 본 지역들이었다. 5곳 중에서도 송파을의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은 여론조사 결과 공천 받은 사람보다 배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고도 경선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김무성은 5곳의 경선 발표에 대해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김무성의 ‘옥새 투쟁’은 사실상 지난 17일부터 시작됐다. 김무성이 상기 8개 지역과 주호영 의원의 지역구 문제를 들어 최고위 회의를 보이콧한 것도 사실상의 옥새 투쟁이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은 이한구와 친박 그룹이 김무성의 거듭된 경고와 최고위 보이콧 등 실력 행사를 코웃음치듯 뭉개버린데서 비롯됐다. 물컹한 평소의 이미지만 믿고 ‘무대(김무성의 별명 ‘무성 대장’의 약칭)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무리한 공천을 강행한 이한구 등 친박 그룹이 새누리 공천 파동의 책임 당사자란 얘기다.

김무성이 친박들의 전횡을 저지할 유일한 방법은 사실 직인 날인 거부 뿐이었다. 공관위에선 황진하 홍문표 위원, 최고위원회에서는 김을동 최고위원만이 비박으로 꼽히는 마당이고 보면 김무성이 움치고 뛸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김무성이 현역에게 유리한 상향식 공천을 통해 비박 우위 구도를 유지하려 했고, 김무성계 인사들이 모두 살아남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비장의 칼을 뽑아들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특히 후보등록 당일에 ‘옥새 투쟁’을 선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재만(대구 동을), 유재길(서울 은평을) 예비후보 등의 피선거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는 비판도 제기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김무성의 옥새 투쟁은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자행된 심각한 부조리를 확실히 고발했다는 점에서 나름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옥새 투쟁’ 대상 5곳 중 진박 중의 진박들인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대구 달성),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대구 동갑)에 대해서는 공천 승인을 했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의미와 성과는 있었다. 해당 지역의 공천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폭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역사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게다가 이번 공천은 단임 대통령의 힘이 아직은 팔팔하게 살아 있는 시점에 행해진 것이었다. 그만큼 김무성의 마지막 저항은 의미심장한 행동이었다.

김무성의 ‘옥새 투쟁’은 막장 공천 드라마가 그들만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곤 했던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는데 기여했다. 권력을 등에 업고 공천 파동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에게 분명히 책임을 묻고 타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옥새 투쟁’은, 이면에 숨은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든, 시대 변화를 반영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유권자들의 의식이 변한 만큼 정치문화도 변해야 한다는 뚜렷한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지난달 발간된 박근혜 대통령의 어록집 ‘사람나고 법났지 법나고 사람났나요’에 소개된 비유가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교훈을 웅변해주고 있는 듯해 해당 문구로 맺음말을 대신한다.

“공룡은 힘이 약해서, 몸집이 작아서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멸종됐습니다.”(2014년 8월 26일 제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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