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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처녀보다도, 새색시보다도 더 곱고 예쁜, 동강할미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4.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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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 T.C.Lee.

더없이 화창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봄입니다. 산에서는 변산바람꽃과 복수초와 너도바람꽃·노루귀·꿩의바람꽃 등의 야생화들이 꼬리를 물고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며 있습니다. 도심 아파트 화단에도 매화가 핀 지는 이미 오래. 뒤질세라 산수유와 개나리가 노란색 꽃물결을 일렁이더니 급기야 벚꽃과 목련마저 꽃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이 꽃동산으로 변해 가는 4월 초순, 급기야 산이 산을 껴안고 강이 강을 휘감아 도는 강원도 정선·영월 백운산 능선, 동강·조양강 가에는 동강할미꽃이 활짝 피어 전국의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어서 와서 알현하라.’ 호령합니다.

빙 둘러선 산과 굽이치는 강줄기를 마주 보고 있는 동강할미꽃. 하늘을 향해 고개를 곧추들고 붉디붉은 꽃잎을 활짝 열어젖힌 당당한 모습이 동강할미꽃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지난 3월 28일 산과 강에 둘러싸인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서 만났다.

특히 영월·정선·평창 지역 사람들이 ‘뼝대’라 부르는 석회암 절벽 곳곳에 핀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은 ‘봄꽃의 여왕’이라 부를 만한 미모를 과시하며 첩첩산중 강원도의 힘을 한껏 뽐냅니다.

 
 
 

고고한 흰색을 비롯해 보라색, 미색에 가까운 연분홍색, 진홍색 등 형형색색의 동강할미꽃. 다양한 꽃 색과 꽃잎만으로도 봄 최고의 야생화로 손꼽을 만하다.

이른 봄 고고성을 울린 변산바람꽃이나 너도바람꽃·노루귀 등 손톱 크기의 자잘한 풀꽃에 비해 크기도 훨씬 클뿐더러 많게는 10여 송이가 무리 지어 핍니다. 꽃 색도 자주·보라·분홍·흰색 등 형형색색인 데다, 허리 숙여 땅을 보고 피는 할미꽃과 달리 하늘을 향해 고개를 곧추세우고 꽃망울을 활짝 터뜨립니다. 이른바 ‘6070 할머니’들이 한창 피어나는 ‘아이돌’을 향해 “나 아직 안 죽었어. 어디 한번 붙어볼 테야?” 외치며 황혼의 비장미를 불태우는 듯합니다.

 

‘뼝대’라 불리는 석회암 절벽에 동강고랭이, 회양목 등과 함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동강할미꽃.

1997년 생태사진가 김정명 씨에 의해 처음 일반에 알려졌고, 3년 뒤 이영로 박사에 의해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의 한국 특산식물로 공인되었습니다. 동강할미꽃의 발견, 그리고 세계 식물학계의 한국 특산식물 인정은 결국 1990년대 논란이 된 동강댐 건설 백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환경론자들은 주장합니다.

백운산 자락 굽이치는 조양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에 자생하는 동강할미꽃. 아슬아슬한 광경에 차마 서서 다가가지 못하고 기어 기어서 다가가야 겨우 눈 맞춤할 수 있다.

어쨌든 해마다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 석회암과 맑은 물이 만나서 환상적인 에메랄드빛을 만들어내는 동강과 그 상류 조양강을 따라 걸으며 형형색색의 동강할미꽃을 만나보기 위해 해마다 전국에서 수백, 수천의 야생화 애호가들이 줄지어 찾아옵니다. 그 행렬을 보면서 동강댐이 건설돼 동강할미꽃 등 자연 생태계가 파괴됐을 상황을 상상해보면 참으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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