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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강봉균-김종인 TV토론 해보자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4.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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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의 이념이나 철학은 종종 건축물의 철근에 비유된다. 작가의 정치적 이념이나 철학이 문학의 기본틀을 이루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문학은 문학다워진다. 참여문학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만약 이념이나 철학을 삐쭉 빼쭉 흉물스럽게 드러낸다면 그 작품은 이미 문학의 범주를 벗어나게 된다. 격문이나 광고 홍보물과 같은 세속적 차원의 유인물 또는 구전물에 불과해질 따름이다.

이같은 명제는 정치에도 통용된다. 이념을 지나치게 앞세울 때 정치는 품격을 잃은 채 이전투구식 패거리 싸움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가 그랬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이 완화되면서부터 우리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양극단의 대립 양상이다.

정치에서의 이념 또한 문학의 그것처럼 정책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골간으로만 기능할 때 우리 정치가 비로소 한 차원 올라설 수 있다는게 필자가 오랫동안 지녀온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봉균 김종인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설전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들이 벌이는 설전은 서로 다른 정치 이념과 철학을 기반으로 구상된 경제정책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들의 설전은 친북이네 종북이네, 친미네 종미네 하며 정치 이념이 직접 맞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것보다 훨씬 듣기 좋고 유익하다. 행정 경험까지 지닌, 관록 있는 두 노정객의 설전 덕분에 20대 총선은 전에 없던 정책 대결 양상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겸 선거대책위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경제통들이다. 전자는 재경부 장관에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등을 역임한 3선 국회의원 출신이고, 후자는 청와대 경제수석과 보건사회부 장관에 4선 의원 경력을 더한 인물이다. 두 사람이 정관계를 오가며 쌓은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치열한 정책 대결을 벌이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행운이다.

두 사람 모두가 진영을 넘나든 이력의 소유자들로서 이제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소신껏 경제정책에 대한 포부를 펼치려 한다는 점도 기대를 모으게 하는 요소다. 강봉균은 과거 진보를 표방하던 열린우리당에서 정책위의장으로 재임하면서 법인세 인상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진보 그룹의 시각으로 보자면 마뜩잖은 우편향 인사였던 셈이다. 김종인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입안해 흥행에 성공했으나, 보수 여당이 감당하기엔 너무 진보적인 정책이었던 탓에 정책 폐기와 함께 토사구팽당한 케이스다.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김종인 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는게 확실해 보인다.

그런 배경 탓인지 강봉균 김종인 모두 각자의 경제 정책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 세운 정책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보니 때론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용어까지 구사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설전은 결과적으로 어느 쪽 정치 집단이 더 유권자 친화적인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두 사람의 정책은 곳곳에서 부딪히고 있지만 그들의 설전은 결코 소모적이지 않다. 유권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들은 강봉균 김종인 두 원로가 정색하고 벌이는 설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많은 경제 전문가와 언론, 행정부의 정책 입안자들도 두 사람의 쌍방향 토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는 매일반이다.

두 사람의 견해가 부딪히는 지점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양적완화는 물론 최저임금, 노인 기초연금 등의 정책 하나하나가 설전의 대상이다. 두 사람의 설전에서도 필자가 특히 흥미를 느끼며 지켜보는 부분이 양적완화 정책이다.

양적완화는 강봉균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인 듯 보인다. 양적완화는 워낙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정책인데다 자칫 한국은행 독립성 시비까지 부를 소지를 안고 있다. 우선 양적완화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설사 정부 여당이 소망한다 할지라도 불감청고소원이언정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게 양적완화 정책이기도 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비둘기’들이 많아진다고 가정해도 그들이 호락호락 여당의 정책에 호응해주리란 보장도 없다.

양적완화는 초저금리로 인해 금리정책이 한계에 봉착하고, 물가상승률이 잠재성장률의 기본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유지되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경기 부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으로 평가된다. 우리의 경우 국가부채 문제로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마저 힘든 상황인 만큼 이제 한은 발권력을 동원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유럽 일본 등이 이미 양적완화에 발벗고 나선데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주춤해진 것도 양적완화 찬성론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강봉균의 정책 아이디어가 양적완화 찬성론자들을 들썩이게 하는 결정적 이유는 또 있다. 강봉균의 양적완화 정책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한정해 실시하는 것으로 세팅돼 있다는게 그 것이다. 두 개 현안에 한해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해 과감한 해결을 시도해 보자는게 강봉균의 아이디어인 소위 한국판 양적완화다. 쉽게 말하면, 좀비기업 정리와 가계부채 해결에 드는 비용을 국민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갹출해 메우자는 얘기다.   

하지만 반론이 만만찮다. 당장 정책 시행의 칼자루를 쥔 한은이 양적완화는 고사하고 추가적 금리정책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한은 수장은 우리의 경제 환경이 선진국과 다르다는 말로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정부 역시 양적완화에 대해 조심 또 조심이다.

김종인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양적완화에 대해 “돈을 많이 풀어 경제를 살리자는 얘기”라며 “돈을 풀면 결국 주식 사고 땅이나 사들이는 사람들만 좋아진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되면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해진다는 말도 했다. 강봉균을 향해서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강봉균은 오히려 김종인을 지칭하며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양반”이라고 맞받아쳤다.

두 사람의 설전으로 이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은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에 서게 됐다. 기왕 ‘한국판’ 버전이 제시된 만큼 도입할지 말지에 대해 보다 심도 있고 다양한 논쟁이 펼쳐져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토론회 등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시작은 치열한 논쟁 당사자들인 강봉균 김종인의 TV 맞짱 토론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당장 선거법에 저촉이 된다면 3당 선대위장 합동토론회 형식을 빌려도 무방하리라 여겨진다. 그마저 여의치 않다면 총선 이후의 TV토론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를 정치답게 만들어준 강봉균 김종인의 설전은 단순한 정치 가십용으로 쓰고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소재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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