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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제주의 봄에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뚜껑별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4.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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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과의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로 학명은 Anagallis arvensis L.

“깽깽이풀도, 얼레지도 없는 제주도에 뭐 하러 와요? 4월엔 육지에 좋은 꽃들이 더 많이 피는데….” 이른바 ‘춘사월(春四月)’ 제주도는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지인에게 제주의 봄 야생화 소식을 묻자 되돌아온 즉답입니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늦추위에 봄꽃의 개화 소식이 의외로 늦더니 일주일여 전 며칠째 이상고온이 이어지면서 깽깽이풀이니 얼레지, 모데미풀 등이 한꺼번에 피어난다고 야단들인데 난데없이 제주행이라니 핀잔 받을 만합니다.

 

현무암 바위 틈새에 무수히 꽃을 피운 뚜껑별꽃. 밤하늘의 별들이 사뿐히 내려앉은 듯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 4일 완도 항에서 승용차를 싣고 제주에 올 때까지 심정은 설렘 반 떨떠름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숙소를 향해 운전한 지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제주 항에서 4km 남짓 떨어진 제주종합경기장 옆을 지나치려는데 일순 눈이 환해질 정도로 만개한 벚꽃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왕벚꽃 자생지 제주에서 펼치는 새봄의 향연’이란 제목으로 제25회 제주왕벚꽃축제가 열리는 현장을 우연히 지나가게 된 것이지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차를 멈추고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왕벚나무 꽃과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유채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보라색과 자주색, 노란색, 흰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의 잔치를 벌이는 뚜껑별꽃. 수술의 노란색 꽃밥과 붉은색 잔털이 뚜껑별꽃의 매력을 배가하고 있다.

화란춘성(花爛春盛)이라고 했던가요. 제주의 4월엔 벚꽃과 유채만 만개하는 게 아닙니다. 풀이든 나무든 가릴 것 없이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꽃을 피우는 바람에 섬 전체에 꽃이 흐드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헌데 그러한 제주의 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야생화를 따로 만났습니다. 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꽃, 제주의 특산 야생화라 일컬을 수 있는 꽃, 하지만 너무 귀하지 않아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꽃, 바로 뚜껑별꽃입니다.

 

거무튀튀한 바위와 파란 하늘, 짙푸른 바다, 그리고 보라색 뚜껑별꽃이 환상적인 4중주를 연출하는 제주의 봄 바닷가 풍경.

해안이나 높지 않은 오름의 양지바른 풀밭에 주로 자생한다고 하는데, 제주에 도착한 다음 날 뜬금없이 ‘저지곶자왈’ 주차장 길섶에서 뜻밖에 첫 조우를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보라색에 넋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살펴보면서는 그 앙증맞은 생김새에 다시 또 기함했습니다.

도감 등에 따르면 제주도와 추자도, 전남의 일부 섬에 자란다고 하는데, 실제 자생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은 제주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별꽃이니 쇠별꽃, 큰개별꽃 등 다른 ‘별꽃’들과 마찬가지로 뚜껑별꽃도 키가 다 자라봐야 30cm에 못 미칠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뚜껑별꽃은 석죽과에 속하는 다른 별꽃들과 달리 앵초과로 족보를 달리하는데, 키만 작을 뿐 꽃 색이나 생김새가 별꽃들과 같지 않은 까닭입니다. 특히 다섯 장의 꽃잎이 가지런한 꽃은 지름이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지만, 독특한 꽃 색을 내세워 보는 이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꽃잎 중앙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술과 암술 주위에 흰색과 자주색, 진보라색의 띠가 2, 3중으로 둘러쳐져 있어 노란색 꽃밥과 함께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5개의 수술대에는 붉은색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벚꽃과 유채꽃이 어우러져 봄날의 환희를 노래하는 ‘제주왕벚꽃축제’ 현장. 지난 4일 제주시 오라동 제주종합경기장 주변 벚꽃 명소의 모습이다.

 뚜껑별꽃은 전 세계적으로 24개 종이 온대와 열대에 분포한다는 것으로 미뤄 제주도 등 국내에 자생하는 1개 종은 대륙성 기후에 적응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남방식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열매가 익으면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꽃받침 가운데 부분이 갈라지고 뚜껑처럼 열려 뚜껑별꽃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꽃 색을 따서 보라별꽃으로, 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총총하게 핀다고 해서 별봄맞이꽃으로도 불립니다. 뚜껑별꽃이 활짝 핀 것을 보기 위해선 게으름을 피운다 싶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가가야 합니다. 학명 중 속명 Anagallis는 ‘해가 뜨면 다시 핀다.’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날이 저물면 꽃잎을 닫고 해가 중천에 올라올 즈음에야 다시 활짝 열기 때문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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