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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고공농성, 오죽 했으면...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4.2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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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의사를 과격하게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가 자기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기간 사용되어온 고전적 방법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운동가였던 에밀리 데이비슨은 경마장에서 말이 경주를 벌이는 도중 영국 왕의 소유로 되어 있는 말을 골라 그 앞으로 뛰어드는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이목을 끌었다. 목적은 여성 참정권 확보 등 여권 신장 의지를 전국에 알리는 것이었다. 데이비슨은 결국 사망했고 그로 인해 영국내에서의 여권 신장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확대됐다. 

비슷한 방식의 양화대교 고공농성이 같은 사람에 의해 한달여만에 재연됐다. 거듭된 양화대교 고공농성으로 양화대교 아치가 고공농성의 단골 장소로 자리매김하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출근시간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5일 오전 7시 10분 쯤 서울의 양화대교 남단 방향쪽 철골 아치 위에 한 60대 남성이 올라갔다. 아치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 아래쪽에는 세아제강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길게 걸쳐져 있었다.

이날 양화대교 고공농성을 벌인 사람은 한달 전에 똑같은 이유로 양화대교 아치에 올랐던 세아제강 해고 노동자 김모씨(60)였다. 김씨는 지난달 24일 이 곳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세아제강이 복직관련 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하자 비로소 아치에서 내려왔었다. 그러나 그 이후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이 날 다시 양화대교 고공농성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하자 소방대원들과 경찰은 추락사고에 대배해 아치 아래에 에어매트를 깐 뒤 설득 작업에 나섰다. 이날의 양화대교 고공농성으로 다리 위의 차선 일부가 통제되는 바람에 출근길 교통 흐름에 상당 부분 차질이 빚어졌다.

김씨는 1985년 부산파이프(세아제강의 전신)에서 해고됐다가 7년 전 민주화포상심의위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가 복직을 거부하자 그동안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이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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