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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황진이도 울고 갈, 참기생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6.0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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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rientails europaea L.

연두색 숲이 날이 갈수록 진초록으로 그 색을 바꾸어 갑니다. 녹음은 짙어가고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 초순 산비탈을 조금만 올라도 벌써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황진이가 울고 갈 만큼 곱디고운 순백의 꽃송이가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전초는 7~25㎝, 꽃의 지름은 1.2~2cm라는 게 도감의 설명인데, 쉽게 말하자면 엄지손가락만 한 키에 약지 손톱만 한 흰 꽃이 꽃대마다 한 개, 또는 두 개씩 달리는 참기생꽃이 이번 주 ‘야생화 기행’의 주인공입니다.

 

갈수록 짙어져 가는 6월의 숲에서 참기생꽃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옛날 평안도로 벼슬 살러 가던 임제(林悌)가 송도의 기생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고 흥 한 번 냈다가 파직당했다는 본보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숱한 야생화 동호인들이 참기생꽃을 보겠다며 불볕더위 속 지리산과 가야산, 태백산, 설악산 등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치 않습니다.

 

어둠의 한가운데서, 연두색 숲을 배경으로 호롱불 밝히듯 군계일학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참기생꽃.

처음 참기생꽃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예쁘기에 ‘기생’이란 단어를 썼을까, 접두어 ‘참’은 왜 붙었을까 등등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건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꽃대마다 한 개, 또는 2개씩 올라온 꽃송이는 7장의 꽃잎, 그리고 중앙에 자리 잡은 1개의 암술과 7개의 수술로 구성되어 있다.

그저 예전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기생처럼 예쁘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그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 곱게 단장한 우리나라 옛 기생의 이미지와 달리 흰색의 꽃이라는 점에서 일본에도 같은 꽃이 있으며,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일본의 기생을 떠올려 기생꽃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참’ 자가 붙은 이유는 분명한데 대암산과 백두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기생꽃과 전초나 꽃의 크기 등에서 차이가 있어 구별 짓기 위해 별도의 식물명을 정한 것입니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숫가 숲에서 2015년 7월 만난 기생꽃. 꽃은 지고 열매를 맺고 있다.

그런데 기생꽃과 참기생꽃을 구분한 도감의 설명이 선뜻 이해가 되는 건 아닙니다. 가장 뚜렷한 차이로 크기가 기생꽃은 10cm 안팎인 데 비해 참기생꽃은 7~25cm이고, 잎끝이 기생꽃은 둥근 데 반해 참기생꽃은 뾰족하다는 것인데, 키 10cm 안팎과 7~25cm가 과연 변별력 있는 차이일지, 둥글다와 뾰족하다는 판단 또한 객관성이 담보되는 기준일지 의문입니다.

2013년 7월 백두산 숲에서 만난 기생꽃. 남한과 시베리아에선 이미 진 꽃이 여전히 싱싱하게 피어 있다.

실제 우리나라 북방계 식물의 고향이랄 수 있는 백두산에서 2013년 7월, 그리고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인근 숲에서 2015년 7월 각각 만나본 기생꽃의 모습은 남한의 참기생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설악산 능선에서 만난 참기생꽃 군락. 비교적 사람의 손길이 덜 닿았기 때문인지 군락 상태가 양호하다.

어쨌거나 5월의 마지막 날 폭염 속에 만난 참기생꽃은 보는 이의 혼을 앗아갈 만큼 황홀한 자태를 뽐냈습니다. 진초록 숲에서 무대 위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듯 쏟아지는 햇살을 독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단아하고 고졸한 야생화의 전형과도 같았습니다. 햇살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는 참기생꽃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저만치 떨어져 상상만 했던 옛 시인의 정취처럼 한걸음 물러나 조망해야 격에 맞을 듯싶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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