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ynanchum ascyrifolium (Franch. & Sav.) Matsum.
녹음이 짙어지면서 자잘한 풀꽃들은 흔적도 없이 스러집니다. 황량한 숲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봄꽃들이 사라진 자리엔 산앵도나무와 쪽동백, 박쥐나무 등 나무 꽃들이 붉거나 노랗거나 하얀 꽃들을 풍성하게 피우며 어느새 숲의 주인 행세를 합니다. 이에 질세라 큰앵초와 감자난초 등 풀꽃들도 제법 키를 키우며 벌·나비를 부르는 경쟁 대열에 합류합니다. 큰 것은 1m 이상 자라는 민백미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훤칠한 키에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선 줄기가 곧고 단단해 얼핏 보면 키 작은 관목이 아닐까 착각하기도 합니다.
“연분홍 꽃 색을 처음 보는 순간 심장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그 어떤 목석 같은 사내라도 연분홍 민백미꽃의 아름다운 충격에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꽃 동무가 민백미꽃을 만난 소감을 자신의 블로그에 썼습니다. 흰 꽃만 달리는 줄 알았던 민백미꽃이 연분홍색 꽃을 피운다는 새로운 사실에, 그에 못지않게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는 기발한 찬사에 구미가 당겨 자생지를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꽃 찾아다니면서 겪는 일이 있는데, 꽃마다 만나게 된 사연이 다르고 또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게 얽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민백미꽃이 ‘세상사, 인연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습니다. 보고 싶어 한다고, 찾는다고, 찾아간다고 다 만나지는 게 아니고 인연 따라 만나기도, 못 만나기도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했다고 할까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히 자생한다는 민백미꽃, 그런데 수년 동안 이 산 저 산 다녔지만 단 한 송이도 만나지 못해 꽤나 애를 태웠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6월 중순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한라산을 오르는 동안 초록의 숲에 눈이 내린 듯 핀 민백미꽃을 숱하게 만났고, 이듬해 5월 서울에서 가까운 연천의 지장산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꽃 동무와의 인연으로 색색의 변이종 민백미꽃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역시 한 번 보기가 어렵지, 길 트면 수시로 만나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합니다.
민백미꽃, 본디 꽃 색이 아니라 뿌리가 희고 가늘어서 백미(白薇)란 약재로 쓰이는 백미꽃의 유사 종인데, 열매에 털이 없다는 뜻에서 ‘민’ 자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꽃 색도 다릅니다. 백미꽃은 이름의 이미지와 달리 흑자색 꽃을, 민백미꽃은 흰색 꽃을, 그리고 또 다른 유사 종인 푸른백미꽃은 녹색이 감도는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분홍색과 자주색, 살구색, 그리고 옅은 녹색 등 색색의 꽃이 핀 민백미꽃이 있다는 말에 솔직히 “그럴 리가…”라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흰색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색의 꽃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꽃 색으로만 구별하는 게 아니라, 꽃대와 꽃자루의 길이에서도 백미꽃과 민백미꽃, 푸른민백미꽃의 차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쉽게 말해 백미꽃과 푸른백미꽃은 꽃대와 꽃자루가 꽃보다도 짧은 반면, 민백미꽃은 꽃대와 꽃자루가 훨씬 길어 꽃들이 대롱에 매달린 채 우산처럼 공중에 떠 있다고 하는데, 실제 본 모습은 도감의 설명과 똑같았습니다. 덧붙여 애간장을 녹인다는 말, 더도 덜도 아닌 가장 적절한 설명이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