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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눈 녹은 백두 자락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분홍노루발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6.2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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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과의 늘푸른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yrola asarifolia subsp. incarnata (DC.) Haber & Hideki Takahashi.

민백미꽃과 개정향풀에 못지않게 분홍색 꽃이 일품인 분홍노루발. 폭염의 여름을 향해 치닫는 달, 6월을 관통하는 야생화의 색이 마치 분홍색 하나인 듯 3주째 연달아 분홍의 꽃색을 자랑하는 야생화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의 주인공인 분홍노루발은 국내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풀꽃이 아닙니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이 즐비한 함경도 및 평안도 산악지대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해 북한 지역에는 있는지 없는지 단정할 수 없으니, 현재로선 중국 쪽 백두산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희귀종입니다.

 

연두색 이파리를 빼곤 모든 것이 분홍으로 물든 분홍노루발이 키 20cm 안팎의 꽃대에 종 모양의 꽃을 가득 달고 서서 백두 자락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잎맥의 형태가 눈에 찍힌 노루의 발자국을 닮았다고 해서 ‘노루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노루발과 식물. 세계에 25종, 우리나라에 7종이 분포하는데 대부분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할 정도로, 나아가 웬만한 식물들이 자라지 못할 만큼 척박한 소나무 숲에서도 살아갈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특징으로 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그중에서도 분홍노루발과 새끼노루발, 호노루발, 콩팥노루발은 특히 북풍한설에도 견디는 전형적인 북방계 노루발과 식물로 분류됩니다.

 

밑에서 올려다본 꽃송이 내부도, 뒤에서 엿본 꽃받침 등 뒤태도 예쁘기 짝이 없는 분홍노루발.

2015년 7월 중순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시베리아 벌판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이미 꽃은 지고 열매만 잔뜩 달고 선 분홍노루발과 호노루발, 새끼노루발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1개월 후인 2016년 6월 14~20일 민족의 성산 백두산 자락 여기저기서 노루발과 식물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종 모양의 자잘한 꽃이 한쪽 방향으로 가득 달린 새끼노루발.

시베리아 숲에서 본 식물들을 다시 백두산에서 다시 고스란히 만났다는 사실은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시원(始原)이 바로 시베리아이고, 백두산이 그 중간 기착지라는 식물학 전문가들의 설명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형의 잎과 잎자루가 긴 게 특징인 호노루발. 꽃은 노루발풀과 비슷한 모양의 흰색으로 핀다.

 가깝게는 1만 년 전부터,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의 북방계 식물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남한에선 대부분 절멸해가는 가운데, 해발 2,750m의 백두산이 한반도 북방계 식물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콩팥을 닮은 잎맥 무늬가 특징인 콩팥노루발. 남한의 울릉도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 20cm 안팎의 꽃이 한 송이만 피어도 숲이 환해진다는 분홍노루발의 환상적인 색감은 과연 소문대로였습니다. 지난해 ‘시베리아의 눈’이라 일컫는 바이칼 호수 인근의 숲에서 만난 분홍노루발의 꽃줄기와 열매만으로도 진분홍의 색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수십 송이의 꽃이 활짝 만개해 종 모양의 꽃을 가득 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히 노루발과 식물 중 최고라 일컬을 만했습니다. 그 옛날 빙하기 때 시베리아 벌판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한에도 내려왔을 터이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분홍노루발. 언젠가 북한의 함경도와 평안도 침엽수림 ‘우리 땅에서 우리 꽃’으로 다시 만나보기를 기대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좌중을 휘어잡는 분홍노루발. 옆 나무에서 튀어나온 뾰족한 가시가 숲 속 공주의 호위무사처럼 보인다.

백두 자락엔 분홍노루발 외에도, 유난히 작은 종 모양의 꽃이 한쪽으로 달리는 작은 새끼노루발, 원형의 잎이 특징인 호노루발, 잎과 또렷한 잎맥 모양이 콩팥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콩팥노루발 등 남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노루발과 식물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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