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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백두 평원의 숨은 요정들, 장지석남 · 월귤 · 홍월귤 · 넌출월귤…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7.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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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과의 늘푸른작은떨기나무, 학명은 Andromeda polifolia for. acerosa C.Hartm.

해발 2,750m의 백두산을 단 한 번이라도 오른 이는 압니다. 그것은 정상의 화산 호수, 천지(天池)를 본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해발 1,950m의 한라산을 가장 높은 산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에게 백두산을 오르는 일은 이제까지 겪지 못한 고산의 생태를 처음으로 보고 느끼는 각별한 여정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와 자작나무 등이 울창한 삼림지대로부터 시작해 사스래나무라 부르는 자작나무과의 고목들이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몸을 비비 튼 채 즐비하게 늘어선 교목 지대를 지나면, 어느 순간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관목과 초본·이끼류·지의류가 잔디밭처럼 드넓은 평원을 이루는 툰드라 지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쯤 오르면 키 작은 관목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두메양귀비 · 개감체 · 돌꽃· 구름범의귀 등 고산 풀꽃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백두 평원에 자생하는 키 작은 떨기나무의 한 종인 장지석남이 키 큰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선봉령 습지에서 아주 작은 단지 모양의 분홍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뻐국채 꽃 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정지용이 ‘백록담’이란 시에서 말했듯, 백록담보다도 해발 1,000m 가까이 더 높은 천지에 오르는 길에선 한 바퀴 돌아서면 키 큰 나무가 사라지고, 한 바퀴 오르면 키 작은 나무가 사라지고, 마침내는 손톱만큼이나 작은 꽃을 피우는 북방계 고산 희귀식물들만 얼굴을 삐죽 내밀고 이역만리 돌고 돌아 찾아온 객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진달래과의 낙엽관목인 홍월귤. 학명은 Arctous ruber(Rehder & E. H. Wilson) Nakai, 키 10cm 안팎의 고산 식물로서 6월 중순 수목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서 역시 작은 단지 모양의 연노랑 꽃을 줄줄이 달고 서 있다.

남한의 산지에서는 아예 나타나지조차 않는다는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그리고 키 큰 나무가 살 수 있는 수목한계선 넘어 높은 산에만 존재하는 툰드라 지대. 백두산의 경우 해발 1,000m 이상에서 시작되는 바로 이 툰드라 지대가, 남한에서는 아예 사라졌거나 있어도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의 소수만이 남아있는 키 작은 관목(灌木)들의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노랑만병초,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들쭉나무, 월귤, 홍월귤, 넌출월귤, 장지석남, 가솔송, 린네풀, 콩버들 등이 그 주인공들로, 이번 주와 다음 주 2회로 나눠 소개합니다. 그중 들쭉나무와 장지석남, 월귤, 넌출월귤은 고산 툰드라 지대뿐 아니라, 역시 키 큰 교목들이 살지 못하는 고원 습지에도 잘 적응해 풍성한 개체 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진달래과의 늘 푸른 활엽 소관목인 월귤. 학명은 Vaccinium vitis-idaea L. 키 20~30cm로 홍월귤보다 2배 이상 크며, 백두산 기슭 습지에선 넌출월귤과 나란히, 고산 평원에선 홍원굴과 어깨동무를 하고 흰색에 가까운 종 모양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함경도에서 자란다.”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에 나오는 설명인데, 너무 오랫동안 만나 보지 못했기에, 잊고 산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이제는 낯선 이름인 장지석남입니다. 진달래과의 늘푸른작은떨기나무인 장지석남은 들쭉나무나 월귤 등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북방계 고산식물인데 목이 없고 배가 불룩한 작은 항아리, 즉 단지를 닮은 자잘한 연분홍 꽃이 6월 중순 우산 형태로 다닥다닥 달립니다.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꽃부리는 마치 심통 난 어린아이가 입을 뾰족 내미는 듯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진달래과의 상록 활엽 소관목인 넌출월귤. 학명은 Vaccinium oxycoccus L. 백두 평원 습지에 자생하는데, 꽃잎이 4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는 게 배드민턴 셔틀콕을 똑 닮았다.

그 장지석남 곁에 흰색 종 모양의 작은 꽃이 달리는 키 작은 월귤과, 배드민턴 셔틀콕 모양의 홍자색 작은 꽃이 인상적인 넌출월귤이 사이좋은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또 수목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서 역시 키 작은 떨기나무인 홍월귤이 흔하게 눈에 띄는데, 남한의 설악산 한 곳에서도 자생하는 게 확인돼 멸종위기종 2급 식물로 지정·관리되고 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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