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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막장 같은 현실과 공수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7.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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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권력이고 힘이야.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 가 아니라 ‘매우 보여 진다’로.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뭣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씁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2015년 11월에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이다. 신문사 주필 이강희 역할로 나온 중견배우 백윤식씨가 낮고도 차분한 어투로 뱉어낸 이 대사는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뚤어진 사회관을 관객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 명대사로 평가 받는다.

애초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사 쯤으로 생각했던 이 말을, 현실 세계에서 똑같이 들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의 한 고위 간부가 이 대사와 똑같은 뉘앙스로 기자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다(?) 물의를 빚었다. 그는 갖가지 정황 설명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파면이라는 사상 초유의 징계를 받은 상태에 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죄라고나 할까.

서울의 한 경찰서 간부는 전직 조직폭력배에게 5억이나 되는 거액을 빌려준 뒤 120%의 이자를 챙긴 혐의로 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역시 1990년대 시리즈로 나온 영화 ‘투캅스’나 ‘공공의 적’에서 본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뿐 아니다. 지난 7일에는 백화점 면세점에 입점시켜주는 대가로 30억원대의 뒷돈을 챙긴 롯데 그룹 총수의 맏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배임수재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역시 그룹총수 일가의 권세로 자릿세를 뜯어내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됐던 소재쯤으로 여겼으나 실제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프로 야구선수들이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들을 저지른 사실이 또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몇몇 선수들이 브로커의 검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천만원에 매수돼 승부를 조작하는 데 가담한 것이다.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사회비리를 고발하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된 양 갖가지 범법 행위들로 올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같은 현실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연속해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다. 허구라는 말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일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잘 안 일어난다. 인류의 대재앙 등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면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믿어진다. 반면 영화는 소설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오늘 날 영화의 소재가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악인들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좋지 않은 사회현상이 현실이 되고, 이를 고발하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면 결코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한층 더 흥미진진하지만 씁쓸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영화의 소재거리가 불거지고 있다. 재력가와 검사장,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 간에 얽히고 설킨 부적절한 관계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의 해외원정도박 혐의 사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법조계 인사들의 부적절한 행위들이 영화화된다면 ‘공공의 적’이나 ‘투캅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명장면과 명대사들이 나올 법하다.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취득 및 현금화 과정을 비롯해 홍만표 변호사의 전관예우와 수임료의 상관관계, 김정주 NXC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인간관계 등 검찰과 정·재계 인사들의 은밀한 이야기와 권력으로 돈을 끌어 모으는 방법 등이 적나라하게 전개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만약 여기에 현재 불거지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블록버스터(blockbuster)급 영화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라 예상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가칭 ‘공직자비리수사처(일명 공수처)’라는 조직을 만들어 국회의원, 장·차관, 검·경 간부와 법조계 인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언필칭 맞는 말이나 현실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조직만으로 그들의 악행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의 자질을 제대로 판단 할 수 있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지금의 사정기관으로 역대 대통령들도 처벌하지 않았던가. 공수처가 자칫 옥상옥이 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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