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Dendranthema zawadskii var. tenuisectum Kitag.
“한때 그 강은 내게 꿈이었다/ 햇살이 강에 앉아 황홀한 물비늘을 토해낼 때마다/ 저 강 속의 세상은 어떠한지/ 온몸으로 갈구하던 기억이 새롭다…”(배재경의 ‘강’에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 차장으로 보이는 황금 들녘은 확실히 계절의 풍요로움을 실감하게 하지만, 그 벌판 한가운데를 굽이쳐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풍요로움보다는 왜인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듭니다.
특히 접경 지역을 흐르는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아주 오래 전 어디에선가 읽었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가을의 강은 계면조로 흐른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이 오기 전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의 절절한 아픔이 전해오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남과 북 사이에 거의 모든 왕래가 끊긴 2016년 가을.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과 함경남도 안변 사이 해발 590m의 추가령에서 발원한 한탄강은 오늘도 무심히 흘러 흘러 남으로 남으로 내려옵니다. 남한의 강원도 철원을 지나 경기도 포천·연천 일대를 굽이쳐 흐른 뒤 임진강과 합류합니다. 본래 큰 여울이란 뜻의 우리말 이름 ‘한여울’로 불리다가 한탄강(漢灘江)이란 한자 이름을 얻었는데, 6·25 전쟁 전후 남으로 넘어오던 피난민들이 물살이 거세고 골이 깊은 이 강에서 길이 막힌 것을 한탄해 한탄강(恨歎江)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눠 많은 젊은 목숨이 스러져갔다고 해서 한탄강이라 불렸다는 슬픈 구전도 있습니다.
이렇듯 곡절 많은 한탄강이 햇살을 받아 황홀한 물비늘을 쏟아내는 가을날 시인의 말대로 ‘저 강 속 세상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반짝이는 물비늘만큼이나 황홀한 강변의 세상은 낱낱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습니다. 깎아지른 주상절리와, 제주도와 더불어 남한 내에서 가장 많다는 검은색 현무암, 짙푸른 강물, 그리고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포천구절초가 그 주인공들로, 이들이 강변 곳곳에서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광은 하나하나가 명품 풍경화들입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해서 포천구절초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철원과 포천·연천 일대 80km를 흐르는 한탄강 변에서 더욱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가을 야생화입니다. 남한 지역 강변에서 만날 수 있으니, 북한 지역을 흐르는 한탄강 상류 60km 구간에서도 자라지 않을까 추정되지만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
구절초·바위구절초·남구절초·산구절초·신창구절초·이화구절초·한라구절초·포천구절초·울릉국화 등 현재 국내에서 자라는 구절초는 모두 7~9개로 나뉘는데, 포천구절초는 다른 구절초에 비해 잎이 더 가늘게 갈라지고 털이 거의 없는 게 특징입니다. 9~10월 꽃이 필 무렵 잎이 마르기 시작하는데, 거센 강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여윈 당나귀처럼 줄기와 잎이 훨씬 가늘고 성깁니다. 해서 아예 가는잎구절초란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흔히 흰색 꽃과 분홍색 꽃을 함께 볼 수 있는데, 갓 피었을 때의 꽃잎 색깔은 분홍색이지만 점차 흰색으로 변해갑니다. 첫 발견지인 포천시는 관내 한탄강과 운악산 일대 바위지대에 자라는 포천구절초를 ‘시화(市花)’로 지정하고 그 문양을 도시 경관 디자인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