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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만추의 정점(頂點)을 찍는 작은 거인, 좀바위솔!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11.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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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inutus (Komar.) A. Berger.

11월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흔히 달력의 절기로 12월부터 3개월 동안을 겨울로 구분하니 아직은 가을인 셈입니다. 지난주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이 한겨울을 방불케 할 만큼 영하권으로 얼어붙었지만, 절기상의 계절은 엄연히 가을이었습니다. 실제 따듯한 가을이 길었던 때문인지 수십만 촛불 인파가 운집했던 광화문을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에는 늦게까지 다닥다닥 달렸던 노란 은행잎이 흩날려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울긋불긋 물든 만추, 미완의 풍경화에 완성의 마침표를 찍듯 활짝 피어난 좀바위솔 군락. 집채만 한 바위 겉에 풍성하게 핀 좀바위솔에서 황혼의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그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만산홍엽으로 물들었던 만추의 서정은 까맣게 잊히겠지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카메라가 있어 화려했던 순간을 되새김할 수 있으니 그 기쁨이 절대 하찮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간 숱한 가을의 단상 중에서 유독 시선을 붙잡는 작은 거인이 있습니다. 속살까지 울긋불긋 물든 가을의 숲에서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키를 오뚝 세우고 홍자색으로 피어나던 좀바위솔입니다.

 

꽃잎 5장과 수술 10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좀바위솔의 앙증맞은 이삭꽃차례.

산이나 계곡의 바위 겉에 붙어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끝이 뾰족한 게 막 싹이 튼 어린 소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통칭 바위솔이라 불리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의 한 종(種)입니다.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고 하여 와송(瓦松)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바위솔은 대표 종인 바위솔을 비롯해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둥근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 등 모두 10여종이 국내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과 짙푸른 가을 하늘, 형형색색의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군락. 몇 해 전부터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번지면서 무분별한 채취로 많이 사라졌다.

그중 잎과 줄기, 꽃까지 다 합해도 전초가 15cm 이하로, 보통 30cm까지 자라는 바위솔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좀바위솔이라 불리는 게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경기·강원·충북·경북 등의 높은 산지에 주로 자생하는 좀바위솔은 9~10월 끝이 뾰족한 비늘 모양의 녹색 잎 수십 개가 빙 둘러 난 정중앙에 어른 손가락만 한 이삭꽃차례를 곧추세웁니다. 특히 온 산이 타오를 듯 붉게 물드는 만추의 계절 화사하게 빛나는 단풍을 배경으로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 바위 겉에 붙어 수십 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연분홍 꽃차례를 오뚝 세우는데, 그 전경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환상적입니다. 꽃 색이 온통 흰색인 것은 흰좀바위솔로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세상을 호령하듯 당당한 모습의 좀바위솔. 작은 거인의 힘이 느껴진다.

집채만 한 바위 겉에 수십, 수백 송이의 좀바위솔이 한데 모인 대군락은 보는 이에게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텅 빈 큰 바위 위에 단 한 송이 홀로 핀 좀바위솔 또한 세상을 호령하는 작은 거인을 보는 듯 장하기 그지없습니다.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해마다 홍자색 꽃을, 벼나 보리 등 곡식의 이삭처럼 다닥다닥 피울 수 있는데, 수년 전부터 각종 바위솔 식물들이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뿌리째 남벌 되는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실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 붉게 물든 단풍 등 3박자와 어우러져 최고의 좀바위솔 촬영지로 꼽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자생지가 몇 해 전 괴멸되었습니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자연은 스스로 대단한 치유 능력이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작년부터 하나둘씩 좀바위솔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 다시 또 못된 손만 타지 않는다면 수년 내에 집채만 한 바위를 가득 덮었던 장관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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