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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IOC위원 사퇴...그 스포츠외교 공백 어떻게 메울까?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8.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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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뷰] 3년 넘게 투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윈회(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IOC는 11일 밤 홈페이지를 통해 집행위원회가 이건희 회장의 가족에게서 더는 이건희 회장을 IOC 위원으로 재선출되는 것을 고려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이건희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1991년 IOC의 올림픽 훈장을 받았던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열린 제105차 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돼 IOC 문화위원회(1997년), 재정위원회(1998∼1999년)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학창 시절 레슬링을 하기도 했던 삼성 그룹 총수로서 각종 프로스포츠는 물론 아마추어 팀을 육성하는데 기여해온 이건희 회장은 스포츠대한올림픽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서 한국이 삼수 끝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앞장섰다.

IOC는 "이건희 회장은 올림픽에 전적으로 헌신적이었다"고 평가하며 “이건희 회장의 투병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가족들이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위로를 보냈다.

IOC 규정상 1999년 이전에 선출된 IOC위원의 정년은 80세로 이건희 회장은 5년 더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는 IOC위원직을 수행할 수 있지만 병상에서 오랫동안 투병 중이어서 사실상의 대외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이건희 회장 가족이 사퇴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으로 후송돼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다음날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입원 9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VIP 병실로 옮겨져 3년 넘게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 건강 상태와 관련해서는 최근 크게 호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에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판 도중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한때 건강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기는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는데 지난 2일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사실을 회고하는 진술 도중 "(이건희)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했다가 다급하게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정정했다.

전날 한겨레가 삼성 관련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건희 회장은 건강하다는 보도가 나간 뒤 발언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당시 이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가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양호하다. 건강한 상태”라면서 “침대에만 누워 있지 않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병실 복도를 오가기도 한다”고 전한 바 있다.

이제 이건희 회장의 사퇴로 한국의 스포츠 외교력은 위상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의 사퇴에 따라 한국은 지난해 리우 올림픽 때 IOC선수위원에 2위로 당선된 탁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유승민 위원만이 남았다. 하지만 유승민 선수위원은 IOC위원과 동일한 대우, 동일한 역할을 하지만 임기 8년의 한시적인 직분이라 이건희 회장과 같은 폭넓은 행보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한국은 엘리트스포츠를 통해 스포츠로 위상을 높여오면서 모두 10명의 IOC 위원들을 배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IOC위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햇던 이기붕 씨로 1955년 IOC위원에 올랐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했으나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4.19혁명으로 사임한 뒤 경무대로 피신했다가 장남 강석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964년 역사·사회학자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긴 이상백 씨가 2년 동안 활동한 뒤 1967년 IOC위원에 선출된 언론인 장기영 씨는 1977년 별세할 때까지 올림픽에서 한국의 위상 확립과 북한과 긴장 속에 ‘코리아’ 호칭 고수 등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김택수 씨가 1977~1983년, 박종규 씨가 1984~1985년 정치인 출신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이 1986년 IOC에 입성해 부위원장까지 맡는 등 사마란치 위원장과 튼튼한 결속으로 2005년까지 장기 활동을 이어갔다.

이건희 회장이 1996년에 한국의 7번째 IOC위원에 오른 이후 박용성 전 국제유도연맹 회장이 2002~2007년 IOC에서 활동했다. 이후엔 선수위원만 연속 나왔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이 2008년 8월부터 8년간 한국에선 처음으로 IOC선수위원으로 활동했고 유승민 위원이 지난해 그 바통을 이은 것이다.

이날 IOC 집행위는 이건희 회장의 사퇴와 함께 9명의 신임 IOC위원 후보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다음달 13~16일 리마에서 열리는 131차 IOC총회에서 이변이 없는 한 관례대로 정식 선출될 예정이다.

이번에 IOC 위원에 입후보했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이기흥 회장이 IOC위원에 올랐다면 그나마 이건희 회장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겠지만 이제 유승민 선수위원만의 ‘솔로 플레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스포츠외교가 됐다.

사퇴한 이건희 회장과 새로운 9명의 후보를 포함하면 IOC 위원은 현재 총 103명으로 빈자리는 12석이다. IOC 위원의 정원은 총 115명으로 개인 자격 70명, 선수위원 15명, 국제경기단체(IF) 대표 15명,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자격 15명으로 구성된다. 이건희 회장 사퇴로 개인 자격 IOC위원의 경우 현재 66개국 94명으로 줄어들어 있다.

그동안 한국의 IOC 위원들은 별세나 각종 비리 등으로 사퇴하거나 임기가 종료돼 더 이상 IOC와 인연을 맺지 못한 사례가 많았지만 이건희 회장처럼 자진사퇴는 사실상 처음이다.

이건희 회장이 사퇴했지만 삼성은 IOC와 돈독하게 이어온 국제 올림픽 후원사(TOP·The Olympic Partner) 지위는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최초로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부터 무선통신 분야 올림픽 파트너로 선정된 뒤 국제스포츠에 재정적으로 기여해온 역할은 국제 스포츠 외교 지형에서 ‘보이지 않은 힘’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삼성이 IOC에서 재정기여 파워를 유지하고 강화한다면 그나마 이건희 회장 IOC위원 사퇴 후유증은 어느 정도 만회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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