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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 文의 파격 아닌 파격...'국군 생일 이전' 이슈 없던 까닭은?

  • Editor. 김민성 기자
  • 입력 2017.09.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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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민성 기자] ‘촛불민심’으로 사상 첫 궐위선거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기념일과 국경일에 파격행보를 이어왔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개방형으로 열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현충일에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배반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면서 “보훈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고 역설했다. 서울광장으로 불러온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선 “밥이 민주주의”라는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내걸었고, 광복절 기념식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겠다고 당당히 선언한 뒤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참배했다.

그리고 10월이 아닌 9월, 내수 진작을 위해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해 열흘 짜리 추석 황금연휴가 이어지는 탓에 사흘 앞당겨 맞은 국군의 날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군의 69번째 생일 축하 장소를 계룡대가 아닌 평택 2함대 사령부로 바꿀 것을 직접 결정했다고 한다. 해군에서 국군의 날 기념식을 갖는 것은 사상 처음으로 그 만큼 파격이었다. 육군 중심의 행사가 될 수밖에 없는 계룡대 개최 관행을 깨고 육해공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2함대로 정한 것이다.

육해공군의 동반 전력향상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방정책의 상징성을 살릴 수 있고 천안함, 연평해전 등 대북안보 이슈를 상기시키는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지였던 셈이다. 서해 최전방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하는 2함대 사령부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 '3축 체계'(킬체인·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체계)의 핵심 자산 실물을 대거 공개, 새 정부 이후 11차례나 이어진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 확보가 최우선"이라며 "강력한 한국형 3축 체계는 우리 군 독자적 능력의 핵심전력인 만큼 조기 구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한반도 안보 위기를 풀어내고 '평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 '강한 군대'라는 메시지를 기념사에 담아냈다. "강한 안보 없이는 평화를 지킬 수도, 평화를 만들어갈 수도 없다"며 평화노선을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응징한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확인시키는데 방점이 찍혔다.

당초 이번 국군의 날에서 문 대통령이 파격 발언이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을 끌었지만 ‘강한 국군’이라는 메시지 외에 다른 화두는 던져지지 않았다.

꼭 한 달 전 국방부 업무보고 때 화제가 돼 여야 간 논란이 됐던 ‘국군의 날 이전’ 이슈가 언급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깨고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당시 정책토의 도중 “1940년 창설된 광복군을 우리 군의 시초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 제기를 하자 문 대통령이 “정통성이 없는 10월 1일이 과연 국군의 날로 적합한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뒤 국군의 날 이전 문제는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우리 군의 역사적인 출발점으로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국군의 날 이전을 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까지 한 것이다.

이후 '광복군 창설일(1940년 9월 17일)로 바꿔 헌법정신과 독립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여당 의원 38명과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이 국군의 날을 이같이 변경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1940년 중국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5월부터 광복군 창설을 위해 장제스 중국 주석과 교섭을 추진했고, 8월 광복군 총사령부의 설치안이 승인됐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는 그해 9월 17일 충칭에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를 개최하고 광복군 창설을 공표한 바 있다. 그래서 광복군의 항일 무장투쟁을 통해 연합군 못지않게 한국도 해방에 역사적 지분이 있어 국군의 뿌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그 창설일이 국군의 날 대체일로 거론돼 왔다.

결의안 발의에 대해 보수야당들은 ‘새로운 역사 편가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커졌다.

현재 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정해진 것은 육군에서 공군이 분리 독립함으로써 육·해·공 3군 체제를 갖추게 된 1949년 10월 1일을 따른 것으로 1956년 제정됐다. 육군은 1946년 1월 15일 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된 날을,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의 모체가 된 해방병단의 창설일을, 해병대는1949년 4월 15일의 부대 결성일을 각각 기념일로 생일상을 차려오다가 공군이 분리되던 날로 통합된 것이다.

아울러 1950년 6·25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북위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을 시작한 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의 서명으로 체결된 날이 모두 10월 1일이어서 국군의 날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게 보수야당의 유지 논리다.

이렇게 여야 간의 국군의 날 이전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이번 국군의 날에서 문 대통령이 광복군 창설일 이슈를 꺼내지 않은 것은 고조되는 한반도 긴장 시국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미 문 대통령은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못박으면서 1919년 4월 13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에 따라 대한민국 건국일을 공식화한 뒤라 그 연장선 상에서 광복군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발언 정도는 할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한반도 위기설이 다시 높아지는 상황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을 수 있다. 국군의 날 이전 이슈가 다양한 논의로 공론화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안보와 국방이 아닌 다른 논제를 언급하는 것은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영무 국방 장관이 기념사에서 광복군 선열을 언급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송영무 국방 장관은 "위풍당당한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에는 나라 잃은 서러움 속에서 맨손으로 군사훈련을 받던 신흥무관학교 선배님들, 대한독립을 위해 몸 바쳐 싸웠던 대한 광복군 선열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쓰러져간 국군 선배님들이 계셨다. 이분들 모두가 오늘의 군을 만들어 낸 영웅들"이라고 강조했다.

국군의 뿌리찾기는 시간을 갖고 접근해 다양한 논의를 통해 내년 국군의 날이 다가오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시도로 이어갈 수도 있다.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사에 편입시키는 문제는 결코 급하지 않은 사안인 셈이다. 이르면 내년 삼일절 경축사에서 담아낼 수도 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문 대통령은 ‘제2의 건국일 논쟁’으로 정치권에 파장을 낳을 수도 있는 ‘논란의 파격’보다는 국방 안정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날 국군의 날 기념식 사상 최초로 한미연합사령관(빈센트 브룩스)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친수, 한국 방위에 기여한 미군 장병들의 노고와 헌신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감사를 전했다. ‘한미동맹의 생일’에 안보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동행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상징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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