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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박처원 사단 고물기술자 이근안 근황, 그리고 김근태 6주기 추모식

  • Editor. 이상래 기자
  • 입력 2018.01.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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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상래 기자] 영화 ‘1987’은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최초 한국영화다. 개봉 12일 만에 ‘1987’ 관객수는 400만을 돌파했고, 개봉 13일에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1987’에 대한 뜨거운 관심 속에 영화 속 등장하는 박처원 치안감 고문팀 핵심인물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전 의원을 고문했던 잔인한 기억들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이근안 근황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9일 CBS 라디오 방송에서 이근안 육성 목소리가 나왔다. 이근안은 이날 CBS 인터뷰 요청에 “지금 30여 년 전 얘기다. 본인 기억도 잘 안 나고, 관련된 사람들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 봐야 나만 미친놈 된다. 살 거 다 살고 나와서 지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이근안은 ‘마지막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도 “절대 안 한다”고 거절했다. 이근안은 서울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서 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근안 부인은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이름 석자가 알려진 것은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한 인물로 드러나면서다. 이근안은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로 김근태 전 의원에 10여 차례 악독한 고문을 행했다. 김근태 전 의원은 훗날 이 고문 후유증으로 한평생 고통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이근안은 ‘박처원 사단’의 핵심인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근안은 군사정권 시절 악명 높은 고문형사로 전기고문, 물고문, 날개 꺾기 등 끔찍한 기술로 학생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 등을 가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처원은 해방 후 월남해 1947년 경찰이 된 이후 줄곧 대공 관련 분야에서 근무했다. 박처원은 갑첩 수사에서 엄청난 두각을 보여 이 분야에서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처원과 이근안 사이는 각별하다. 이근안이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는데, 곧바로 당시 대공부실장이던 박처원 경호원 역할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근안은 박처원 도움으로 대공 업무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12월 29일 김근태 6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여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김근태 전 의원을 추모했다. 추미애 대표는 당시 추도사에서 “촛불 정신을 받들어서 드디어 정권교체를 해내고 오늘 다시 김근태 정신을 기린다”고 밝혔다.

영화 ‘1987’을 통해 우리사회는 박처원, 이근안, 그리고 김근태 전 의원 등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어두웠던 과거 기억들을 상기시키며 ‘6월 항쟁’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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